응봉산 깊은곳에 숨어있는 용소골 (2008.6.6~7)

2008. 8. 18. 03:07산행일기

지난 5월 2일, 청계천에서 시작되어 광화문을 뒤엎은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 학생, 청소년, 주부, 직장인, 노동자가 생업을 끝내고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 일방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언론장악 중단, 노동탄압 중단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쏟아지는 폭우만 피하자는 생각인지, 대국민담화로 말장난을 하며 국민들을 조롱하고 있다. 이에 맞서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와 시민들은 현충일 연휴 3일(6월 6~8) 동안 100시간 연속 촛불집회를 예고했다. 그동안 다른 시민들처럼, 퇴근 후 촛불집회로 출근했던 나는 이번 연휴에는 촛불집회에 휴가를 내고. 강원도 오지 산행에 나섰다.

 

6월 5일 퇴근 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밤늦게 귀가하여, 6월6일 아침 늦잠을 자고 말았다.

더불어한길의 먼발치에서, 함께가자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동서울로 부랴부랴 달려갔건만, 예정된 10시 50분 버스는 이미 떠난 다음이다. 다행히, 11시 10분 임시버스를 탔지만, 3일 연휴를 맞이하여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 다행히 경기도를 벗어나며 서서히 길이 뚫리기 시작한다. 버스 안에서 봉화 금강송 가로수와 울진 불영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며 울진터미널에 오후 5시 20분에 도착한다. 오늘 산 중턱까지 올라야 하는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18:05) 울진터미널에서 덕구온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덕구계곡(온정골)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이 시간에 우리만 산 속으로 들어가고, 산행을 마친 등산객과 가족 동반 여행객은 산을 나간다. 용소골에 비해 덜 알려진 덕구계곡은 용소폭포와 선녀탕, 효자샘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1시간 넘게 계곡을 따라 오르니 덕구온천의 뜨거운 원천수가 솟아오르는 곳에 도착했다. 뜨거운 온천수가 노천으로 솟아오르게 되어 있어 초여름에 따뜻한 물에 손을 씻고 세수를 한다. 수질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먹지말라는 표지가 없어 마셔보기도 한다. 물맛은 그저 그렇다. 응봉산 동쪽인 덕구계곡은 7시를 넘어서며 어둠이 깔리고 있어 원천수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다가, 내일 산행을 고려해서 더 오르기로 한다.

13개의 다리중 마지막에 있는 영국 포스교 모형을 지나고부터 계곡이 멀어지고 된비알이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며 어둠이 짙어지고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 게 느껴진다. 급경사가 계속되어 어느 정도 평지가 확보되는 곳까지 오르다 보니 오후 8시가 넘도록 계속 산행을 계속하다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응봉산의 밤손님이 된다.

 

어제밤 늦은 산행이 피곤했는지 산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출을 보려 했는데 늦잠이다. 하지가 가까워오고 있어 해가 언제 뜬지 모를 정도로 해가 쨍쨍이다. 자리를 정리하고 30분을 더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에서 얼마 안 가 응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덕구온천 주차장에서 응봉산 정상까지 약 3시간이 걸린 것이다. 동쪽 저 멀리 동해바다가 보여야 할 텐데, 옅은 안개가 껴서 바다가 보이지는 않는다. 서, 남, 북쪽 방향 모두 산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다른 고산처럼 발아래 낮은 산들이 첩첩 놓여 있기보다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09:25) 정상을 내려서 남서쪽 용소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용소골로 내려가는 길은 잡목과 풀들이 우거져 있다. 유명세에 비해 덜 훼손되어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작년 늦여름에 환경단체 회원행사에 참여했으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녀서 길을 더 잘 알았을까? 워낙 험한 산이라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모르는 상태에서 조심조심 길을 찾아가는 게 낫다. 구수골 방향 갈림길을 지나 급한 경사의 등산로가 한참 내려오니, 멀리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상을 떠난 지 1시간이 지난 시간이다.

 

(10:50)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보니 계곡이 나타난다. 용소골 상류의 응봉골인데 이름 없는 아기자기한 작은 폭포가 많다. 응봉골을 따라 20여분 내려가보니 제3용소 아래에서 용소골과 합류된다. 합류지점에 배낭을 내려놓고, 함께가자우리와 제3용소에 올라가 본다. 10m 높이의 폭포와 소(沼)가 있다. 바닥이 검게 보일 정도로 깊은 소가 매우 넓게 형성되어 있는게 인상적이다. 제3 용소 바로 아래 넓은 암반 위에도 얕은 소가 있는데, '어찌 저런 지형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특이한 지형이다.

 

제3용소에서 내려와 먼발치에서를 만나 본격적인 용소골 트레킹을 한다. 수 없이 이어지는 폭포와 소, 계류와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 모래사장, 자갈마당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글로 모두 기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게 솔직한 고백일 듯싶다. 제1용소와 제3용소 중간쯤에 있을 제2용소를 찾는 것은 그래서 더 어렵다. 제2용소로 생각되는 큰 소만 해도 서너 곳이고, 한길을 넘는 작은 소는  수십 곳이다. 용소골 소에는 바위가 이중삼중으로 또 다른 소를 감추고 있다. 바위를 흐르는 물은 콸콸, 졸졸, 또르르르, 우당탕탕하며 스스로 수로를 만들며 물이 흐르고 있다. 

용소골은 국내 최고의 협곡이다. 계곡 양쪽 옆이 거의 가파른 바위라 산쪽으로는 다른 등산로가 없어서 계곡을 수십 번 건너 다니며 어쩔 수 없이 계곡트레킹을 해야만 한다. 6월 초중순 무렵 강수량이 적을 때는 계곡에 빠지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지만, 조금만 수량이 많으면 물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6월 하순부터 8월 하순까지 두 달 동안은 일기예보를 꼭 챙겨야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을 지형이다.

 

용소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방이 모두 암벽으로 둘러싸인 폭포와 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신비한 제1용소였던 것이다. 설악산 십이선녀탕 계곡도 가봤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닥의 소가 이렇게 넓게 이루어진 곳은 없었는데, 오랜 시간 이어 온 자연의 역사와 신비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15:40) 제1 용소를 지나 계곡을 건너니, 협곡이 갑자기 사라지고 넓은 지형으로 바뀐다. 용소골, 문지골, 굉이골이 이곳에서 만나 덕풍계곡을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조금 더 걷다보니 덕풍산장이 보이는데, 여기까지 왔다고 해서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잠시 넓어진 골짜기는 다시 좁아지며 폭포와 소를 만들고, 때론 너른 암반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덕풍계곡을 만들어 낸다. 계곡 옆으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1시간을 넘게 내려가 풍곡면 마을에 도착하면 산행은 끝이 났다.

덕구온천 입구에서 출발한지 약 22시간, 순산행시간은 12시간 정도 걸렸다. 이 힘들고 오랜 산행을 함께 한 '함께가자우리'에게 산행은 무엇일까? '먼발치에서'에게 산행은 무엇일까? 나에게 산행은 무엇일까? 


산행지 : 응봉산 (998.5m 강원 삼척 / 경북 울진)

날 짜 : 2008년 6월 6~7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덕구온천-덕구계곡(온정골)-정상-제3용소-용소골-제1용소-덕풍산장-풍곡마을

산행시간 : 휴식포함 산행시간 12시간

일 행 : 3인 (맑은물, 먼발치에서, 함께가자우리)

교통 : 동서울-울진(시외버스), 덕구온천(택시) / 풍곡마을-태백(1시간마다 운행하는 버스), 태백-동서울(시외버스)


[포토 산행기] 

덕구계곡(온정골) 입구에서 만나는 폭포
[덕구계곡은 응봉산이 아니라, 계곡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계곡이다]
(온정골) 부드럽게 파여간 폭포 + 소
[온정골의 소]
[온정골의 온천 원탕]
[등산로에서 발견한 어떤 야생동물의 똥]
[응봉산에는 금강송이 많다]
[응봉산 정상, 정상석 위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다]
[정상 조금 지난 곳에서 남서쪽 조망, 산세는 부드럽지만 저 아래에 용소골을 품고 있다]
[느낌이 좋은 용소골 상류의 응봉골? 계곡]
[용소골 지류 응봉계곡의 폭포]
[제3용소와 폭포. 넓이, 깊이 단연 최고다]
[이제부터는 용소골 계곡 트레킹하는 함께가자우리, 먼발치에서]
용소골 계곡 트레킹
용소골 계곡 트레킹
건너고 또 건너고
또 건너고
바위에 붙어서 이동하고
[힘들 땐 함께 쉬어 가자 우리]
먼저 건너고
나중에 또 건너고
[용소골 협곡, 이런 곳을 수십 번 건너야 한다. 수량이 조금 많으면, 산행불가]
줄을 잡고 진행하고
아슬아슬하게 진행하고
용소골, 용소협곡
어쨌든 빠져나가야 한다
용소골을 걷는 함께가자우리
[발아래는 시커먼 소가 있는데 지나야 한다. 발디딜 공간은 있다]
용소협곡
용소골, 쉬어간다
[이 바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운명 같은 바위 ^^]
여기도 소
[물을 밟고 건너야 하는 곳도 있다]
힘들다. 짧게 쉬고 또 걷고
[용소골 제1용소. 작은 폭포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소를 만들었다]
[제1 용소 지나니 바로 이런 산길이 나와 당황. 산딸기? 꿀풀로 영양보충]
[풍곡마을로 내려가는 길... 덕풍계곡의 푸르른 소]
[끊임없는 걸음의 연속이다]

 

[덕풍계곡 들어가는 다리, 드디어 산행을 끝냈다. ]
[제3용소 아래에 있는 넓고 얕은 소]
[자세히 보면 소가 2중, 3중으로 되어 있다. 폭포도 없는데 소가 생기다니.....]
[간장소라고 맘대로 이름을 붙여놓은 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