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6. 05:15ㆍ북한산특집
서울기준 하지 일출 시간은 5시 11분이다. 산에서 일출을 보기 어려운 시간이지만, '하지 일출 산행'에 도전해 보기로 했지만 너무 이른 새벽에 깨거나 평상시와 같은 아침에 일어나 산행이 미뤄지고 있다.
하지를 지난 5일째, 아이에게 꼭 산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알람을 맞추고 새벽에 일어났다.
4시 50분에 어두운 거실을 나오는데 밖은 이미 환해지고 있다. 일출을 보려면 20분 만에 가까운 능선까지 올라야 하는데, 이미 늦은 것 같다. 몸이 덜 풀린 가운데 무리하면 안 되기에 적정한 속도로 간다.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정릉 청수계곡은 여러 새의 노랫소리로 가득 차있다. 그 가운데 되지빠귀는 청아한 목소리로 계곡 이쪽저쪽에서 주고받듯 노래를 한다. 가까운 곳에서 되지빠귀 소리가 나길래 살펴보니 약 3미터 앞에 되지빠귀가 작은 몸을 움츠리며 온 힘을 모아 노래한다. 아직 주위가 밝지 않아 되지빠귀가 나를 못 본 것 같다.
청수계곡과 멀어질수록 되지빠귀 소리가 줄어든다. 되지빠귀는 물과 먹이(벌레)가 많은 물세권을 선호하는 것 같다.
되지빠귀 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이른 새벽 내원사 오르는 길은 온통 새 세상이다. 딱따구리, 까마귀, 뻐꾸기 같이 익숙한 새소리부터 작은 새소리까지 한가득이다..
5시 15분 즈음 내원사를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날씨가 맑으니 이미 해가 떠 오르고 있을 텐데, 칼바위 능선 서쪽 사면은 아직 어둡다. 숲이 우거져 더 어두운 느낌이다. 서두르지 않고 칼바위 능선 갈림길에 오르니 떠 오른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아침해가 보인다. 일출 순간은 놓쳤지만 새벽 5시 30분에 해를 보니 뿌듯함도 생기고 즐거움도 생긴다. 냉골약수터 방향 바위에 오르니 북한산 자락과 도봉산 아래로 햇빛 머금은 안개가 펼쳐져 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새벽 산기운을 깊이 들여 마신다. 마음먹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칼바위 능선을 따라 문필봉, 석가봉을 넘어 북한산성 주능선까지 계속 진행하면 된다. 능선 왼쪽 청수계곡에는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능선 오른쪽 도시에서는 기계와 차 소음이 시작된다. 평소에는 이 도시소음에 익숙해져 지내지만 이른 아침 칼바위능선길에서는 도시 소음이 유별나게 들린다. 문필봉 바위에 올라 안개와 어울려 있는 백운대를 보고 되돌아 나와 칼바위능선 정상으로 향한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지나는 칼바위 능선의 바윗길 구간이 이제는 익숙하다. 이전과 달리 위험구간을 의식하지 않고 얼마나 멋진 풍광이 펼쳐져 있을지 기대감으로 빠르게 오른다. 해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위쪽 안개는 옅어지지만, 산 아래에 내려앉은 안개는 옅어지지 않는다. 한강 건너까지 선명하던 지난겨울과 달리 오늘은 안개가 있는 서울이다.
아침 6시 20분, 칼바위 능선 최고봉인 석가봉에 오른다. 기대했던 대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선한 북한산 봉우리, 능선, 하늘과 안개 가득한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보현봉에서 시작된 북한산성 초록능선이 굽이치며 백운대 봉우리 군으로 이어진다. 도봉산은 안개 위로 까치발을 한 듯 서 있어 더 높아 보이고, 수락산은 안개 위로 정상봉우리만 뾰족 튀어나와 있다. 수락산보다 조금 낮은 불암산은 아예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동쪽 멀리 천마산, 예봉산, 검단산의 정상부가 안개 위로 솟아 있다. 오늘은 안개위지만, 날씨 좋은 날엔 제대로 운해 위로 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풍광은 원한다고 모두 보는 게 아닐 것이다.
석가봉을 내려와 칼바위능선과 북한산성 주능선이 만나는 곳을 오른다. 이곳을 지날 때면 1학년이던 아이와 3월 봄바람을 맞으며 김밥 먹던 생각이 난다. 즐겁게 산행을 했지만, 어린아이를 고생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북한산성주능선 길을 따라 보국문으로 간다. 그냥 위로 지나가려다가 누수 보수공사가 끝났으니 문으로 내려갔다 올라온다.
산성주능선 옆으로 피어있는 노루오줌, 나리꽃은 그 어느 때 보다 색감이 곱다. 아침 산행 덕분이다. 성덕봉에 오르다 뒤돌아 보니 도봉산과 수락산이 반짝인다. 맑고 차가운 샘물로 세수한 것 같은 모습이다. 역시 아침 산행 덕분이다. 글로 묘사하는데 한계가 느껴질 때 사진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산성주능선 가운데 최고의 전망대 성덕봉에 오르니 남쪽으로 서울, 남산, 청계산, 관악산, 삼성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선명함보다는 희미하지만 아침기운이 묻어 있어 좋다. 북쪽으로는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와 서쪽으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북한산성계곡(백운동)과 어우러져 있다. 아침 안개는 사물을 감추기도 하지만, 선을 없애서 서로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성덕봉을 내려와 대성문에 도착한다. 활짝 열린 대성문을 통해 아침햇살 입자들이 밀려 들어온다. 아침이 아니었으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빛깔, 소리, 향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대성문을 나와 일선사 갈림길 방향으로 걷는다.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다.
이 시간의 산행이 아니라면, 오늘 산행 코스는 내게 매우 익숙한 곳이다. 그 익숙함이 있기에 나는 새로운 것을 더 볼 수 있다. 자세히 보고 달리 보고 다른 마음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움이 보이지만, 새로움을 찾자는 목표를 세우면 안 된다. 익숙하고 식상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마음, 다른 시각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유월 가뭄에 정릉천 발원지에는 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숲 속이라 촉촉하게 젖어 있다. 근처에서 청딱따구리가 짧게 울 때 내는 삐익 삐익 소리가 들려 주변 나무를 살폈더니 청딱구리가 보인다. 그런데, 한두 마리가 아니라, 무려 네 마리가 나와 같은 진행방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다닌다. 어쩌면 부모새와 아기새일 수 있을 것 같다. 반가운 만남이었다.
일선사 갈림길을 지나고부터는 산행의 목적을 빠르게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꾼다. 보토현능선을 따라 평창동 갈림길을 지나 영취사 계곡방향으로 들어선다. 만생샘에 들러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가뭄에 청수계곡 영취사 지류는 바짝 말라 있다. 청수계곡이 가까워지니 아침 산책에 나선 어르신과 등산객을 만난다.
정릉 탐방안내소를 8시 30분에 지나고 뛰어갔지만, 오늘따라 일찍 집을 나선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
목표로 했던 일출산행은 못했지만, 북한산의 새벽기운을 받아 온 상쾌한 산행이었다.
산행지: 북한산 문필봉-칼바위능선-성덕봉
날 짜: 2024년 6월 26일
날 씨: 맑음
일 행: 단독산행
산행코스: 정릉 청수계곡-문필봉-칼바위능선-산성주능선-성덕봉-대성문-청수계곡
산행시간: 3시간 40분 (4시 50분~8시 30분)
교 통: 도보 (참고, 정릉 청수장, 110A•B, 162, 143, 1020, 1113번 버스)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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