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3. 09:23ㆍ북한산특집
가을이 깊어질수록 큰 산에 가고 싶은 마음 점점 커진다.
11월 첫째주가 지나야 큰 산에 갈 수 되는데, 가을의 절정은 10월이다. 북한산 산책으로 가을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10여 년 전 진보정당 평당원이었던 조피디(형)와 연락이 닿았고, 함께 도봉산에 가게 되었다. 에스앤에스 친구로 서로 얘기는 주고받았으나, 막상 산행 날짜가 다가오니 반가움과 귀찮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한다.
약속 하루 전 오후부터 비가 내렸으나 일기예보에 의하면 아침 일찍 갠다고 하여, 약속대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도봉산역으로 향한다. 집을 나오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황은 핑계였고, 사실은 집을 나서기 싫은 귀찮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도봉산역 도착하여 전화를 주고 받으며 조피디형을 만났다. 지난 세월은 피할 수 없지만 옛날 스타일 그대로다. 반가운 인사는 곧바로 산행으로 이어진다. 몇몇 건물이 새로 생긴 것 같지만, 도봉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나니 2012년 무렵 녹색친구들과 산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전국 산에 케이블카 열풍이 불었고, 녹색친구들이라는 산악회와 이곳에서 가벼운 카드섹션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가깝다고 느낀 도봉산을 12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가깝고 친하다고 느껴도 실제로 만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비슷한 것 같다.
광륜사 앞을 지나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니, 서울 미래문화유산 김수영 시비가 나온다. 산행 중 폭포를 만나면 김수영 시인의 폭포가 떠 오르고, 산 정상에서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나는 풀들을 보면 김수영 시인의 풀이 떠 오른다. 김수영 시비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 도봉서원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영국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조피디형과 지난 세월 살아 온 근황을 줄줄 얘기한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할 필요 없이 생각과 삶을 술술 풀어내는 대화가 좋다. 어제 비 덕분에 촉촉해진 도봉계곡은 편안한 대화를 거들뿐이다.
도봉대피소를 지나 가파른 길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축사 입구가 나온다. 등산로를 잠시 벗어나 천축사에 들러보기로 한다. 수백 개의 청동불상군을 지났더니 골짜기 건너에 천축사가 있고 그 뒤로 선인봉이 우뚝 서 있다. 사찰 달력에 자주 나올 법한 멋진 풍광이다. 우리의 목적은 산행이어서 천축사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고 등산로로 돌아 나온다.
적당히 가파른 길을 조금 올랐더니 마당바위가 나온다. 12년 전 녹색친구들과 여기까지 올랐다가 내려갔었다.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이제는 놓아 줄 기억이다. 여러 산에 너른 바위는 대체로 마당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도봉산 마당 바위가 가장 넓은 것 같다. 산에서 만나는 마당바위는 인생처럼 기울어진 마당이다. 마당바위에서 서면 도봉구, 노원구와 건너편 수락산, 불암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북한산이 보인다.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반쯤 걷히고 있다.
마당바위에서 주봉으로 가는 길과 자운봉을 가는 길이 나뉜다. 우리는 잠시 고민끝에 최단코스로 오르기로 한다. '드르르륵...' 전화기 진동이 울려 한참을 일과 관련된 통화를 하며 오른다. 휴식과 일을 엄격히 구분하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산행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으니 좋다. 전화를 끊고 보니 길이 꽤 가파르다. 도봉산의 깔딱 고개라고 불릴 만 하지만, 주변으로 곱게 물든 단풍이 보이고,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이 이제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에 바람이 거센지 구름은 동남쪽으로 빠르게 떠내려 간다.
낙석금지라는 안내판이 없어도 아찔함이 느껴지는 기암괴석 옆을 지나 신선봉 아래까지 오른다. 안전 난간을 잡고 신선봉에 오르는데 찬바람이 매섭다. 잠시 멈춰서 혹시나 해서 챙겨온 장갑을 끼고 다시 오른다. 도봉산 산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신선봉은 처음 오르는것 같다(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니).
신선봉에 오르니 주변 봉우리와 능선과 하늘과 구름을 신선의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로 구름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남서쪽으로 뻗은 우이능선 끝에 북한산 백운대 정상부가 성벽처럼 서 있다. 신선봉 주위 봉우리들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바로 옆의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은 그 자체로도 절경이지만, 위로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고, 아래를 받치고 있는 너른 자연과도 잘 어울린다. 동남쪽 수락산, 불암산 역시 이 거대한 공간에서는 도봉산의 풍광과 어울려 있다. 도봉산이 아름다운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한적한 평일에 도봉산에 오르니 번잡함이 없어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다. 북한산 의상능선이나 비봉능선, 보현봉 일대도 기암괴석과 멋진 봉우리들이 있고,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일대도 아름다운 절경이 많지만, 도봉산 신선봉에서 느껴지는 고도감에 더해 가을, 찬바람, 하늘과 구름까지 오늘 이 시간의 도봉산 정상은 최고다. 자연의 어떤 아름다움은 분명 여러 우연이 겹쳐서 더 증폭되는 순간이 있다.
조피디형과 서로 사진을 남기고 신선봉을 내려와 도봉주능선 방향으로 향한다. 오른쪽 북쪽은 포대능선이니 우리는 왼쪽 주봉과 우이암 방향으로 향한다.
올 가을 날씨 변덕이 심하여 단풍이 다소 늦는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절정인지 절정 무렵인지 알 수 없으나 오늘 도봉주능선에는 고운 단풍이 많다. 오래 전 한겨울 더불어한길 친구들과 산행하며 지났던 도봉주능선 주봉 근처에서 냠냠 점심을 먹는다. 차가운 강풍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오봉능서 갈림길을 지났다가 다시 오봉에서 오는 등산로를 만난다. 진행 방향에 따라 좌우로 자운봉 쪽이 보이기도 하고, 오봉이 보이기도 하고, 북한산이 보이기도 하고, 도봉구와 노원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이기도 한다.
도봉산역으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 보문능선 갈림길을 지나 우리는 계속 직진하여 우이암 전망대까지 도착한다. 말로만 듣던 우이암, 거대한 소 귀(牛耳)가 탁 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운악산의 미륵바위 같은 느낌도 난다. 꽤 근사하고 멋진 바위인데, 하필 오늘 전망대 근처 바위 위로 아기고양이 서너마리가 돌아다닌다. 산고양이가 산새의 서식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고양이의 귀여움은 지나가는 다른 등산객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우이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는 다들 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우이암을 지나 거친 바윗길을 잠시 내려서 원통사에 도착한다. 원통사 뒤로는 우이암이 서 있고, 앞으로는 서울의 마지막 논이 있는 무수골이 펼쳐져 있다. 천축사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인데, 위치가 참 좋다. 지금은 이런 높은 곳까지 등산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예전에 이런 산속 사찰은 스님들이 깊은 수련을 위한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원통사를 내려오면서 우이동까지는 완만한 내리막 길이 길게 이어진다.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간간이 우이능선이 보이는데 높은 고도가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늦은 3시 50분쯤 우이령 유원지로 내려와 산행을 끝낸다. 조피디형과 오랜만에 산행 후 짧은 뒤풀이를 하고 종종 함께 산행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혼자 하는 산행은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일행과 함께 산행을 하면 재미도 있지만, 타인의 삶과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 좋다.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산행을 즐기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산행정보
산행지: 도봉산 (서울시 도봉구)
날 짜: 2024년 10월 23일
날 씨: 맑음
일 행: 맑은물, 조피디
산행 코스: 도봉산역 - 수성동계곡 - 사 - 자운봉 - *봉 - 우이암 - 원통사 - 우이동
산행시간: 6시간 (9시 50분~15시 50분)
교 통: 전철 도봉산역 / 우이-신설 경전철 우이역
#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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