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맞으며 오른 백운산(2004.01.18)

2004. 3. 8. 18:49산행일기

친구들과 산행을 위해 전철 타고 인덕원으로 가는데, 가볍게 눈발이 날린다.
일기예보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아서 날씨가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겨울산행을 하기엔 오히려 잘된 거 같다.

 

오늘 가려는 산은 의왕시에 있는 백운산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수원에서 서울 양재동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의 한가운데 있는 산으로 더불어한길에서 작년 5월에 바라산-백운산-광교산 종주를 한 적이 있고, 작년 6월에는 백운산 옆의 바라산 산행을 한 적도 있다. 백운산과 바라산은 산행 보다는, 어쩌면 백운저수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덕원역 개찰구 출구에서 포비와 그의 남자친구 너구리를 만났고,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if형을 만났다. 인덕원역은 산행을 위해 몇 번 왔기 때문에, 이제는 4번 출구로 나가면 청계산 입구를 가는 마을버스도 있고, 백운저수지와 고천리 백운사를 종점으로 하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더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하여 조금 더 기다렸다가, 4명이 백운사행 마을 버스를 타고 백운저수지 끝자락에서 내렸다. 얼어붙은 백운저수지는 흰 눈으로 덮여 있다.

 

백운산, 200401

버스 정류장에서 지난 6월 바라산 번개 산행 때 하산길로 택했던 고분재를 향한다. 가볍게 날리던 눈이 마을입구에서부터 거세어지더니, 고분재 골짜기 입구에서는 함박눈으로 변해 펑펑 쏟아진다. 겨울 동안 내려 쌓인 눈위에 또 눈이 내리니 온통 눈 세상이다.

 고분재까지 오르는 겨울 계곡은 어떤 계절의 풍경보다 아름답다. 내리는 눈을 머리와 어깨에 이고 있는 겨울나무들, 바위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눈나라 언덕을 오르는 것 같았다.

 

 고분재에서 왼쪽(북쪽)은 바라산을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남쪽)은 백운산을 오르는 길이다. 지난해 5월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왔을 때는 심한 가뭄으로 이 길에 먼지가 툴툴 날렸었는데, 오늘은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높은 지대의 눈이 날려와 쌓인 곳은 종아리까지 푹푹 빠졌다. 눈길을 걷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지만, 정확한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려온다. 하지만, 거센 눈발이 계속되고, 바람에 눈보라까지 치고 있어서, 밥 먹을 곳이 마땅히 없다.


포비와 if형은 밥을 먹자고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조금 더 나은 곳을 찾자고 했다. 조금 더 진행하여 언덕을 오르니 마치 일부러 만든 대피소처럼, 눈을 이고 있는 둥근 소나무가 있어서 그 아래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포비가 가져온 따뜻한 보온도시락과 순무김치, if형이 가져온 김밥은 순식간에 동났고, 추위를 달래기 위해 오랜만에 달콤한 포도주를 마셨다.

 

백운산, 200401

밥을 먹고 백운산 정상을 향해 가는데, 내리던 함박눈이 약해지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싸리 눈이 되어 얼굴을 때린다. 피부가 고운(?) 포비와 피부의 보호기능이 떨어진 if형은 얼굴이 따갑다고 시끄럽게 재잘 거렸다. 약 두 시간 넘게 눈보라를 헤치고 미끄러지면서 올라 드디어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우리보다 한세대 위의 산악인 10여 명이 있었다. 그분들도 눈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며 왁자지껄 신이 나 있다. 우리는 그분들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고 오메기마을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처음 하산길 30여분은 힘든 구간이었다. 가파른 경사길에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고, 거센 싸리눈 눈발은 그칠 줄을 몰랐고, 안개까지 몰려와 있었다. 다행히 그리 높지 않고 하산길이 길지 않은 산이라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큰 산에 갔더라면 큰일 날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산은 정말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준비잘하고 계획을 세워서 떠나야 할 것이다. 

하산길에서 썰매가 없어 아쉬웠을뻔 했는데, 내가 준비해 간 특수스펀지(?)가 썰매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었다. 중턱 이후엔 경사가 그런대로 완만해져서 스릴 있게 썰매를 탈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안개도 걷히고 눈발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내린 눈을 무겁게 들고있는 나무 위의 눈을 뿌리며 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하산하다 보니 어느새 인가가 눈앞이었다.

 

백운산, 200401

아쉬운 마음에 밍기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포비양이 '우리 눈사람 만들어요'라고 했고,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우리는 눈을 굴려 순식간에 귀여운 눈사람과 통통한 눈사람을 만들어서 눈도 만들고, 손도 만들고, 코도 만들고, 입도 만들었다.

 정말 얼마 만에 만들어보는 눈사람인가? 너무 재미있어서 눈사람을 크게 만들면서도 신이 나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눈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고, 눈사람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큰길로 내려와 산행을 끝내니, 눈도 완전히 그쳤다. 우리는 뒷골 마을에서 20여분을 기다려 인덕원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우리는 흰 구름의 백운산이 아니라, 흰 눈을 찾아, 흰 눈을 맞으며, 흰 눈이 가득한 백운산에 갔다 온 것 같았다.

하늘에도 땅에도 나무 위에도 바위 위에도, 사람들 머리 위에도 온통 눈밖에 없었다. 아이들 처럼 쌓인 눈에 몸을 던지고, 눈썰매와 눈사람 만들기까지, 눈을 제대로 즐긴 재미있는 산행이었다.


산행지: 의왕 백운산 

일 시: 2004년 1월 18일

날  씨 : 눈 내림

코  스 : 인덕원역-백운호수-고분재-백운산정상-뒷골마을

산행시간 : 4시간 30분 (11시 30분~ 4시)

일  행 : 포비, 너구리, if, 맑은물

교  통 : 인덕원역에서 백운호수 방향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