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3. 24. 11:13ㆍ산행일기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한 세상을 잠시 뒤로하고, 산을 찾는다. 세상에 무관심하고 혼자만 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보수 양당의 정쟁과 극한 대립은 재미 있는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즐길 것 같은 느낌이다.
인배장에서 토요일을 보내고, 택시 타고 신촌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
인터넷에서 본 정보대로라면 송추 가는 기차가 있어야 하지만, 주말 노선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평일 출퇴근 노선도 10일이 지나면(2004년 3월 31일) 운행종료 예정이다. 기차역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산은 가야 하지만, 가까운 북한산을 가자고 수정 제안을 한다. 나는 처음 목표로 했던 산이니까 그냥 가자는 주장을 했고, 결국 원안대로 사패산에 가기로 재의결 한다. 쾅쾅쾅!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동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갈아타고 송추에 내리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 사패산은 험하지 않은 낮은 산 이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버스에서 내려 사패산 매표소까지는 20분정도 4차선 옆을 걸어야 하는데, 차들이 쌩쌩 달리고 인도가 없어 위험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현장 옆에 있는 매표소의 공단직원이 지금 원각사에 가면 공양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귀띔해 준다.
[사패산 터널 공사 현장, 사람과 자연보다 건설자본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토건 정부의 한계]
매표소를 지나니 문제의 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 공사현장이 있다. 시민들, 환경단체, 종교계가 노력했지만 결국은 막지 못하고 국립공원에 터널이 뚫린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지나는 굉음을 들으며 산을 올라야 하고, 앞으로 어두니골 계곡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국립공원 사패산 터널대신 조금 돌아 의정부 외곽으로 노선을 정하는 것이 자연과 교통의 흐름에 좋을 수 있다. 충분히 재검토할 수 있지만, 굳이 사패산과 수락산-불암산에 구멍을 뚫어가며 도로 공사를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원각사까지 오르는 길은 딱딱한 콘크리트 포장길이지만, 길옆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따뜻한 햇살에서 봄이 왔음을 느낀다. 원각사에 도착해 같이 간 친구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공양을 먹게 되었다. 관악산 연주암이나 청계산 청계사 공양과 달리 사람이 적고 음식은 맛있다. 아무것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감사하며 원각사를 떠났다.
원각사 뒤쪽에는 작지만 제법 모양새를 갖춘 폭포가 있다. 어떤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계곡물에 담겨 있는 술을 얻었다. 산행에서는 금주하라고 하지만, 산속에서 마시는 한두 잔의 술맛은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염치 불고하고 얻었고, 산악회에선 기꺼이 술 공양을 하신다.
조금 더 오르니 멀리 사패산 정상의 바위능선이 보이는데, 개미 만한 사람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폭포를 지나 안부까지 오르는 길은 상수리나무 혹은 그와 비슷한 나무 숲길이다. 낙엽산행 같이 느껴져 그리 지루하지는 않다. 여느 산과 달리 산행코스가 아기자기하면서 깔끔한 맛이 느껴진다. 사패산은 군부대로 묶여 있다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근 도봉산이나 북한산보다 자연훼손이 덜하다고 한다. 사패산 등산로의 깔끔한 느낌은 바로 잘 보존된 자연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원각사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표소를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사패산 정상은 봉우리 전체가 커다란 바위덩어리이다.동쪽으로 수락산, 불암산, 북쪽으로 불곡산과 이름 모를 산들, 남쪽으로 도봉산과 백운대-인수봉이 아련히 이어진다.
정상 한쪽 움푹 파인 바위에 모여 앉아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나눠 먹는다. 원각사에서 공양으로 배를 채웠지만 넣어도 넣어도 음식은 계속 들어간다. 점심을 먹고 또 주변 풍경 감상에 빠져있다가, 지난 2002년 11월에 올랐던 범골 쪽으로 내려간다.
한참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범골대신 회룡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간중간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이 사패산 바위덩어리와 대비된다.
험한 바위구간이 나와 혹시나 힘든 구간인가 했더니, 해방 후 김구 선생이 잠시 피신해 머물렀던 석굴암이 나온다. 석굴암 앞 작은 연못에는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이 일부러 채운 것처럼 가득 차 있다. 조금 징그럽게 느껴졌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의미다.
석굴암 아래 바위 샘물을 마시고, 다시 시멘트 길을 따라 터벅터벅 내려오니 시끌 거리는 도시가 나타난다.
회룡역에서 전철을 타고 조용한 자연에서 어수선한 세상 속에 섞인다.
산행지 : 사패산 (경기 의정부, 서울)
날 짜 : 2004년 3월 21일
날 씨 : 맑음
코 스 : 불광동 - 송추 - 원각사 - 사패산 - 범골능선 - 회룡사 - 회룡역
산행시간 : 4시간(12시 ~ 4시)
일 행 : 오직한길, 먼발치에서, 강아지, 맑은물, 지누, 함께가자우리
교 통 : 버스(불광동-송추), 전철(회룡역)
[(좌) 정상에서 바라본 수락산, (우) 너른 바위의 정상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사패산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
[생강나무 꽃]
[사패산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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