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31 노인봉 산행후기-1

2004. 4. 23. 18:28산행일기

전날 밤 11시에 청량리역을 출발한 기차는 어둠을 달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강릉역에 도착했다. 요 며칠 날씨가 포근했는데, 이른시간이라 생각보다 춥게 느껴진다.

 

강릉역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바로 8시, 소금강 가는 버스를 탓다. 버스는 이리저리 헤매이는듯 하더니, 9시가 넘어서 소금강 입구에 우릴 내려놓았다. 문을 연 몇몇 상점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황량하다. 당장, 아침을 먹을 일도 걱정이다.

햇살이 있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배낭을 내려놓았는데 화장실 옆이다. 지금 그런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 상점에가서 물을 떠와 밥을하고 국을 끓이고, 라면도 끓여서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는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밤새 기차여행에 쌓인 피로와 배고픔을 달랜다.

 

아침을 먹고, 다들 결의를 다지며 산행을 시작한다. 시간은 이미 10시 30분을 넘고 있다. 1월말, 눈으로 유명한 영동지방이지만 눈이 없는게 너무 아쉽다. 수도권과 중부지방은 수십년만에 폭설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눈이 많던 오대산은 겨울나무만 황량하게 서있다.

 

노인봉

 

눈은 없지만 소금강 계곡은 곳곳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절경이 있다. 구룡폭포, 식당암, 십자소, 만물상, 오작담등 기묘한 바위와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은 시원한 물이 흐르는 여름의 계곡과는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중간에 계곡으로 내려가 얼음을 타고 계곡을 오르기도 하였다.

 

낙영폭포까지 소금강 계곡은 경사도가 완만하여 힘들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구간이 얼마나 경사가 급한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봉

 

낙영폭포를 지나고 부터는 갑자기 경사가 급해졌고, 지금까지는 거의 한무리로 오르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운데 그룹에서 사진도 찍고 여유있게 올라갔다.

 

경사가 급해서 조금 힘은 들었지만, 왼쪽에 거대하게 달려가는 백두대간의 웅장함이 힘을 주는것 같았다. 백두대간 능선은 황병산을 지나 매봉으로 대관령으로 이어지는것일게다. 1시간 이상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니 또한 북쪽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산줄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바로 노인봉 아래지만, 바로 노인봉으로 오르지는 않고 노인봉 대피소를 거쳐 노인봉에 오르도록 등산로가 나있다.

노인봉 대피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왠지 모를 운치가 느껴지는곳, 하룻밤쯤 묶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대피소였다.(15:30)

 

노인봉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뒷쪽의 노인봉 정상으로 올랐다.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눈이 없어 느껴졌던 아쉬움이 달아난다.

남쪽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 고원지대, 북쪽으로 뻗어져 나가는 이름모를 산들, 동쪽의 동해바다!

아마 눈까지 있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가기 아쉬웠지만, 시간도 늦고해서 발걸음을 옮겼다.(16:20)

 

노인봉

[노인봉 대피소]

 

노인봉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4시40분!!

겨울산행인데, 시간이 많이 늦었다.

 

늦었지만, 겨울산행을 설레이게 하는 눈썰매를 타지 않고 내려갈 수는 없다. 눈이 쌓인 하산길은 훌륭한 썰매장이 된다. 길을 너무 미끄럽게 만들어버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산에서 썰매타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혹시, 썰매로 미끄러워진 길로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사과하겠습니다. 아무도 안보겠지만..^^;;)

 

노인봉

[눈썰매타기, (c)먼발치에서]

 

눈이 많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썰매를 즐길 만큼의 눈은 쌓여 있었다. 미리 준비해온 비료포대를 잘라서 썰매를 만들었다. 눈이 적어 돌멩이에 엉덩이가 부딛치는 아픔쯤은 더 큰 즐거움을 위해 참아야 한다.

걷다가 눈이 쌓여있는 구간이 되면 바로 썰매를 탔다.

 

진고개쪽 하산길은 짧기 때문에 1시간이 조금 지난 6시쯤에 밭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래서, 진고개쪽에서 노인봉을 오르는 코스가 더 쉽고, 일반적이라고 한다. 밭길을 따라 가다보니 오른쪽으로 진고개산장(휴게소)이 있었고, 민박집을 찾아 계속 걸었다.

벌써 주위는 어두워졌다. 아스팔트길이고,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크게 걱정하고 않았지만, 겨울산행에서 이런 늦은 산행은 안된다.

민박집에서 나온 차가 2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한길사람들을 태워갈 동안,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결국 3번째 돌아 온 민박집차를 타고 민박집에 도착했다. 

어제밤에 기차에서 잠을 못자고, 피곤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12시가 넘으니 꿈나라로 떠난다.

 

나를 비롯한 4명은 그동한 못다한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하며 새벽까지 자리를 접지 않았다. 새벽에는 술이 떨어져 민박집 옆 비닐하우스에 있는 다른 산행팀에게 다음에 갚기로 하고 빌려(?)오기도 했다.

 

다음날, 일어나 월정사에 들렀다. 93년 여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왔었는데 10년6개월만이다. 기억나는것은 월정사지 8각9층 석탑(?)..-_-;;

월정사 입구의 멋진 전나무 숲이 있었던가?

 

월정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진부읍내로, 진부에서 동서울가는 버스를 타고 인공적인 따뜻함이 있는 도시로 돌아왔다.

산행이 끝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월정사

[월정사 8각9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