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폭설이 내린 의왕 백운산 (2004.03.07)

2004. 5. 21. 21:04전국산행일기

심술쟁이 날씨가 봄이 오는 길에 폭설을 뿌려 놓았다.

3월초 충청, 경북, 강원남부지방으로 50cm가 넘는 눈이 내렸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고립되고, 농촌에서는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피해복구와 성금모금으로 한바탕 시끄러운 가운데 한가하게 산을 찾는다는 것이 양심에 찔린다. 매사 신경 쓸 수는 없다고 스스로 정당화하고 의왕 백운산에 가기로 한다. 일주일 전 운길산은 봄이었는데, 다시 겨울산행을 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11시에 인덕원역에서 산행 친구들을 만난다. 조금 늦게 오기로 했던 분이 갑작스럽게 다른 일이 생겼다고 하여 분식집에서 간단히 먹고 오후 1시 무렵 백운호수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의왕 백운산을 알게된 것은 작년(2003년)이다. 도시 근교에 있는 산이지만 조용한 분위기와 느낌이 좋아 오늘로 세번째 백운산 산행을 하게되었다.

 

꽃집과 백운호수 지나 삼거리에서 내린다. 주변 길에 눈이 거의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지난 1월중순, 폭설이 내리던 날 백운산에 오를때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있는 백운산 입구에 오니, 지난 두 달이 맞닿아 있는 듯 짧게 느껴진다.

오늘 계획한 산행코스는 백운저수지-속말-고분재-백운산 정상-서쪽능선- 하산. 1월 산행과 같은 코스다.

 

산 초입부터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오늘은 아무도 썰매를 준비하지 않았는데, 버려진 비닐과 장판을 주워 썰매 탈 준비를 한다. 오르는 동안 눈썰매를 타고 싶었지만,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고분재까지는 욕구를 참고 산행을 한다. 고분재에 오르니, 따뜻한 봄 햇살에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분다. 

고분재를 지나면서 부터는 더 이상 참을 것 없이 썰매를 타면서 올라갔다. 아니 어떻게 썰매를 타면서 오를까? 걸어 올라갔다가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걸어 올라가서 썰매 타기를 반복하면 된다. 체력 방전은 즐거움으로 충전된다. 놀면서 올랐는데도 정상까지 1시간 30분밖에 안 걸려 이제 오후 2시 30분이다.

시야가 좋지 않던 1월 산행과 달리 오늘은 남쪽과 서쪽의 수원, 의왕, 군포 방향으로 시야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오늘은 먼 풍광과 조망은 뒷전이다. 산을 오를때마다 목표가 바뀌지만, 오늘은 먹기 위해, 썰매 타기 위한 산행이다. 정상에서 친구들이 준비해 온 밥, 김밥, 컵라면으로 2차 점심을 먹는다.

 

정상에서 내려갈 때는 아쉽지만, 오늘만큼은 기대되는 하산길이다. 서쪽 능선 하산길이 처음에는 약간 가파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완만해서 걷기 좋은데, 눈 쌓인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아까 주워 온 즉석 썰매를 이용할 시간이다. 나무에 부딪히고, 돌멩이에 부딪혀도 아픈 줄 모르고,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어릴 때 집 뒷산에서 타던 비료포대 눈썰매의 추억이 살아난다. 중간에 경사가 완만하고, 나무가 없는 곳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썰매장이다. 30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썰매를 타고,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 같은 코스를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했다.

더 타고 싶은 썰매를 마무리하고 이제 산을 벗어나야 한다. 지난 1월 산행 때 버스를 한참 기다렸던 뒷골마을이 아닌, 백운호수 마을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종교시설(?)을 지나기는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백운호수 삼거리로 나온다.

 

2004년 3월의 의왕 백운산은 2004년 1월의 오대산 노인봉 산행보다 더 겨울같았던 봄산행이었다.


 [포토 산행기]

 

백운산 정상에서 서족 방향 조망
백운산 정상석. 뒤로 수리산이 보인다.
백운산 정상에서 남서쪽 방향. 왕송호수
아래 모락산, 뒤로 수리산
즐거운 한 시절.
버려진 장판이 눈 썰매
2004년 3월, 폭설 후 의왕 어느 지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