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8. 24. 20:45ㆍ산행일기
지난해 늦가을 찾았던 가평 귀목봉의 청정함이 그리워, 주말에 친구들과 다시 귀목봉을 가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8시 10분, 청량리역에서 1330번 버스를 기다린다. 먼저 도착한 1330번 2대는 모두 청평까지만 운행하여 보낸다. 운악산 아래 현리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1시간마다 운행한다. 청량리에서 아까운 시간 1시간을 허비하고, 가평군 현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상판리 가는 버스는 이미 20분 전에 출발해 버렸다.
다음 버스는 11시 20분이다. 지난해 귀목봉을 오를때보다 1시간이나 늦었다. 12시나 되어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산행 시간이 너무 늦어질까 걱정도 되고,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난 보람도 없으니 허무하기도 하다. '하나사랑'이 갑자기 '운악산도 괜찮은데 운악산이나 가지?'라고 한다.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순식간에 산행코스가 귀목봉-청계산에서 운악산으로 변경되었다.
(11:20) 현리에서 상판리행 버스를 타고, 운악산 입구에서 내린다. 바위가 뾰족뾰족하게 솟은 아름다운 운악산이 바로 눈앞이다.
조종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니, 등산로 양옆으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두부, 잣막걸리, 파전 등을 파는 운악산 아래 음식점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산행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지만, 운악산 입구의 골프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불쾌감을 안겨준다. 아무리 골프가 스포츠라고 우겨도, 산을 파헤쳐 건설되고, 엄청난 농약을 뿌려 환경을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한국에는 맞지 않는 스포츠이다.
(11:50) 운악산 매표소를 지나 10분정도 오르다가, 만경로 쪽으로 올라가는 경치가 좋다는 하나사랑의 의견대로 만경로로 올라간다. 만경로 초입은 숲이 우거져 주변 조망은 가려져 있지만, 조금씩 올라갈수록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치와 조망을 보니 어서 빨리 능선 상부까지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매표소를 지난지 50분, 왼쪽은 정상 방향, 오른쪽은 '등산로 없음' 방향이다. 등산로 없음 방향으로 20미터 정도 가니 멋진 바위가 나왔고, 그 바위에 올라 처음으로 완전히 트인 주변 조망을 감상하며 쉬어간다. 등산로로 되돌아와 정상방향으로 오르는데, 가벼운 바윗길이 20여분 이어진다. 바윗길에 약한 우리 같은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재미있는 구간이었다.
바위구간을 올라갔다가 내리막 길로 잠시 내려서니 눈앞에 기암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운악산 병풍바위다. 바위라기 보다는 거대한 수직 암벽인데, 각 암벽은 오밀조밀한 작은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병풍바위를 지나니 또다른 절경이 나타나는데, 사진으로 많이 알려진 미륵바위다. 일행 중 누군가 남근바위라고 잘못 말 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윗부분이 더 커야 남근바위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어쨌든, 미륵바위는 바위의 형상도 특이하지만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도 멋있지만, 저 멀리 연인봉 능선이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더더욱 멋있어 보였다.
커다란 참나무가 몇 그루 쓰러져있는 흙길을 지나니 다시 엄청난 바윗길이 나타난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조심해야 할 구간일 텐데, 다행히 바위가 말라있고, 등산로로 잘 정비되어 있어 모두들 즐겁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바위틈을 올라 철계단 앞에서 잠시 쉬면서 주위를 바라본다. 발 아래는 수십길 낭떠러지이고, 저 멀리 현리에서 상판리로 이어지는 긴 골짜기와 매봉-연인산-명지산-귀목봉-청계산으로 장쾌한 능선이 이어진다.
철계단을 지나고, 철사다리를 오르니 정상은 아니지만 주변이 확 트이면서 넓은 암반이 나온다. 정상보다 이곳의 경치가 좋다고 하여, 점심을 먹기로 한다. 각자 준비해온 먹을 것들을 모두 펼쳐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구름(雲)과 바위(岳)의 산에 올라 산에 취하고, 향기로운 술에 취하니 내가 바로 신선이요, 이곳이 바로 신선의 세상이다.(아래 계속)
[등산 안내도의 오른쪽 하단부의 만경로로 시작하여 정상에 올랐다]
[정상 오르는 길에 바라본 운악산]
[병풍바위]
[연인산 능선을 배경으로 하는 미륵바위]
[정상을 오르는 바윗길]
(15:05) 암봉을 내려왔다가 20여 미터를 오르면 바로 운악산 정상이다. 정상은 절경에 취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려는 듯 그저 평평하기만 했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쪽 암릉의 모습, 주변의 조망은 훌륭했다.
정상까지 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 15분이 걸렸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정상을 내려와서는 잠시 걷기 좋은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운주사 쪽으로 하산을 결정하였다.
하산하면서 또다시 만난 갈림길에서 나는 경치를 보려고 오른쪽(북)으로, 다른 사람들은 왼쪽 하산길로 갔는데, 가깝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들리지 않아서 주위를 살펴보니, 반대편 능선 위에 사람들이 보였다. 짧은 시간 이렇게 멀어진 위치에 놀라긴 했지만, 병풍바위와는 또 다른 모습의 수직 암릉과 기둥바위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내가 갔던 곳은 포천 강구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위험하여 폐쇄된 등산로였다.
경치를 뒤로하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보니, 남은 잣술을 마시고 있었다. 몇 모금 같이 마시고 무지개폭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고, 설치된 사다리는 흔들거렸지만, 부실한 정도는 아니어서 위험하기보다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운악산을 오르면서는 이전에 다녔던 다른 산들이 떠오르곤 했는데, 만경로를 따라 오르는 암릉구간에서는 북한산이나 설악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넓은 흙 정상은 한북정맥의 백운산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상에서 운주사 쪽 내려가면서는 참나무 숲이 우거진 철원의 고대산, 혹은 가파른 국망봉의 하산 길이 생각났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만난 무지개 폭포는 지리산 대원사 계곡의 무재치기 폭포를 연상시켰다.
궁예성터를 지나고부터 계곡이 시작되었는데, 숲이 우거지고 수량이 적은 계곡은 나뭇잎 유기물이 많아서 계곡물이 그리 깨끗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곳은 의외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폭포가 시작되는 절벽이 보이긴 했지만, 폭포를 보려고 내려갈 수는 없어, 안전한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폭포 전망대가 나왔지만, 물을 잃어버린 폭포는 젖은 병창에 지나지 않았다.
궁예성터에서 무지개폭포로 이어지는 이 계곡에는 궁예에 관한 전설이 내려져 오는데,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출처는 인터넷 검색)
'태봉 왕국을 세운 궁예는 자신의 집 앞에서 큰 소리로 운 황소의 주인을 잡아다 목을 베는 등 갖은 짓을 다한 왕이었는데, 왕건이 일어서자 도망갈 길이 없어서 농가에 숨어들었다. 그러다가 궁예는 가래에 머리를 찍힌 채 운악산으로 도망쳐와 무지개폭포 위쪽으로 성을 쌓고 왕건군에 대항하다가 최후를 맞이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인근 강씨봉에는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출처는 인터넷 검색)
'궁예가 처녀의 유방을 베어 먹는 등 학정을 일삼자, 왕비인 강씨가 궁예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언을 했지만, 궁예는 분노하여 강씨를 강씨봉으로 귀양보냈다. 강씨는 날마다 국망봉에 올라 철원을 내려다 보면서 나라 걱정을 했다. 어느 날 민란이 일어나 궁예가 쫓기는 것을 보고 강씨는 과거의 충고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궁예는 오히려 강씨를 잔인하게 죽였고, 이 광경을 본 백성들이 궁예를 돌로 쳐서 죽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궁예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잔인함이 있다.
(17:00) 무지개폭포의 장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니, 계곡을 한번 더 건너는 갈림길이 나왔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갔더니 운악정에 도착한다. 참고로 계곡을 건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운주사로 갈 수 있다. 운악정 바로 아래는 47번 국도가 지나가고, 이렇게 산행은 끝이 났다.
산행이 끝남을 아쉬워하며 운악정 아래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운악산의 정기를 머금은 계곡물로부터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온몸으로 타고 들어왔다.
47번 국도 아래에 있는 주유소에서 다 큰 개들의 재롱잔치(?)로 마지막 즐거움을 느끼고, 5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산행시간만큼 길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운악산의 절경은 모든 피로를 잊고 남을 만큼 아름답고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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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운악산 (경기 가평 / 포천)
산행날짜 : 2004년 8월 22일
산행인원 : 5명
날 씨 : 흐림
산행시간 : 6시간 20분 (11:30~17:50 식사, 휴식시간 포함)
산행코스 : 하판리(동구)-매표소-만경로-병풍바위-철사다리-정상-갈림길-무지개폭포-운악정-47번국도
교통 : 청량리에서 1330 버스, 광릉내에서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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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던 사다리 길]
[무주채폭포 전망대에서 / 비가 온 다음날이면 장관일 것 같다]
[저 발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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