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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기] 산행. 힘들면 쉬었다 가자

산 기운 보다 따뜻한 사람의 기운, 관악산 (2026.5.9)

by 걷는맑은물 2026. 5. 17.


산에 가고 싶을 때 요즘은 함께 갈 사람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곤 한다. 

이번 산행의 동반자는 지난겨울에 산행 약속을 했던 옛 직장상사다. 북한산 최고 비경 숨은벽 코스로 안내하고 싶었으나, 거리가 멀어 중간 지점인 관악산에 가기로 하고 일정을 기다렸다.
며칠 전 '토요일 9시 사당역 4번 출구에서 봅시다'라고 문자가 와서 바로 일정을 확정했다. 
관악산 갈 때는 사사(사당역, 4번 출구)를 기억하면 된다.

집을 나와 사당역으로 가면서 옛 추억을 떠올려 본다.
옛 직장상사는 20여 년 전 안산에 있는 기계 회사 기술부서에서 3년 정도 함께 일을 했다. 내가 주임이나 대리였을 때 경력직으로 입사한 분이다. 나는 기계 담당, 선배는 전기 담당이어서 함께 하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전기에 대해 물어보면 잘 알려주었다. 당시에 업무 칸막이와 텃세 문화가 있던 회사라, 박 선배의 다정함은 업무와 회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배가 먼저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풍력회사로 이직하면서 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한 삶의 과정에 잠시 스쳐 지나가고 잊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몇 년 전 선배가 일하는 회사에 갔었지만, 전혀 몰랐었다. 근래에 다시 연락이 닿았고, 우연히 산행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 직장상사와 주말에 산행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4 (사당역 4번 출구)에서 9시 9분에 모자를 쓰고 걸어오는 선배를 만난다. 
익숙한 얼굴을 보며 나오는 웃음은 반가워서일까? 멋쩍어서일까? 반가운 인사 후 김밥 구매, 버리는 시간 없이 바로 관악산으로 향한다.

"이 길이 맞나? 다른 길인 거 같아"
2년 전 이 코스로 산행을 할 때 나도 비슷한 낯선 기분을 느꼈었다. 도시에서 오르는 관악산은 샛길이 많고, 2011년 관악산-우면산 대홍수로 인해 계곡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넘어선 기억은 정확하기도, 의도하지 않게 왜곡되기도 한다. 기억을 꺼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꺼내온 기억이 서로 달라도 마음이 있으면 대화가 이어진다. 
 
마침내 산행 입구에 도착하며 의심을 덜어 낸 선배의 발걸음이 매우 빠르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관음사 옆 배드민턴장을 지나 가파른 암릉을 오르면서도 전혀 느려지지 않는다. 선배의 신체 나이는 실제 나이의 절반인 것 같다. 산행 초반 30분 정도 걸어줘야 몸이 풀리는 나는 숨이 차서 따라가는데 급급했지만, 차마 천천히 가자는 말을 건네지 못한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다른데 처음부터 힘들다고 할 수 없다. 사진을 찍는 척 슬쩍슬쩍 숨을 돌리며 해발 약 330미터 국기봉에 도착한다. 본의 아니게 응시한 1차 체력테스트 합격이다. 슬쩍 물어봤더니 매일 아침 1시간씩 운동을 한다고 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느새 내 위치가 꽤 높아져 주위가 한눈에 내려 보인다. 
남쪽으로 연주대가 보이고, 북쪽으로 서울 남산을 지나 시선이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까지 이어진다. 그 너머로 경기 북부의 산들이 보인다. 오늘 날씨가 좋아 거의 무한대의 시야다. 서쪽으로 계양산, 동쪽으로 희미한 천문대를 통해 예봉산, 갑산을 알아보고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검단산을 알아본다. 

관악능선 초입 봉우리에서 본 서울. 한강, 남산, 북한산, 도봉산, 오른쪽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까지 잘 보인다.
관악능선에서 동쪽 조망, 우면산, 형젝 같은 대모산-구룡산, 뒤로 남한산성 능선, 더 멀리 검단산이 보인다. 오른쪽으론 청계산.


국기봉에서 연주대로 이어지는 관악능선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여전히 빠른 걸음이지만 호흡이 리듬을 찾아 헉헉거리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니 산에서 산 얘기를 한다. 관악산 산행 추억, 동쪽으로 보이는  산은 청계산일까? 광교산일까? 의왕 모락산 아래 보리밥집, 아웃렛이 생겨 천지개벽한 바라산, 가려고 했던 북한산, 최고의 산 설악산, 성인들의 놀이터 아침 가리계곡 트레킹 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오르락내리락 봉우리를 넘으며 인생얘기로 이어진다. 다리가 바쁜 만큼, 입과 귀도 바쁘다. 2주 전 도봉산 산행처럼 계산 없이 사심 없이 마음속 얘기가 흘러나온다. 

관악능선에서 바라 본 연주대

 
멀리 있던 연주대가 꽤 가까워져 쉬기로 한다. 그늘진 바위에 앉아 선배가 건네주는 사과를 베어 물으니 문득 옛 생각이 난다. 20대 후반 이 계절이었다. 처음으로 삼성산을 넘어 관악산 능선까지 올랐지만, 간식이 없었다. 바위 위에서 혼자 쉬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등산객이 말을 걸며 사과를 건네주었다. 그때는 사과 한 개의 고마움이었지만, 그 사과가 아직도 기억나는 거 보면 따뜻한 세상을 건네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쉬었다가 바윗길을 넘어가는데 까마귀들의 놀이터다. 발로 부리를 긁고 있는 재미있는 까마귀, 바위 끝에 앉아 있다가 먼저 뛰어내리며 날개를 나중에 펴는 까마귀도 있다. 요 녀석들 관악산 능선과 골짜기를 날아다니는 재미를 만끽하는 것 같다. 그래, 너희는 날개를 달고 왔으니 높은 데서 놀아라. 나는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 땅에서 놀테다.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보며 암릉을 넘고, 큰 바위 2개 아래로 만들어진 관악문을 지난다. 연주대 오르는 마지막 구간에서 바위에 박혀있는 철근을 발견한다. 그랬었다. 연주대에서 관악능선으로 내려서려면 밧줄을 잡고 험한 구간을 지나야 했다. 더불어한길 산행이었는지, 누구와 함께 산행을 했는지 희미해진 기억이 떠 오른다.

연주대가 꽤 가까워 졌다.

 
사당역에서 등산객들과 우르르 함께 산행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빠르게 걸어서 올라오는 동안 혼잡함은 별로 없었다.
마침내 오른 연주대는 탁 트인 봉우리가 아닌 남녀노소 등산객들이 가득 찬 광장의 모습이다. 선배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란다. 혼잡한 인파를 피해 연주암에 들른다. 불자는 아니지만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면 부처님의 뜻이 느껴진다.
"부처는 네 마음속에 있다. 외부에서 구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 서거라"
 

연주대 부근에서 본 동쪽 골짜기 조망.


다시  연주대로 돌아갔는데, 공무원과 봉사단체에서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 좁은 병목구간은 세줄로 서서 지나가라고 한다. 정상 인증사진 한 줄, 올라오는 한 줄,  내려가는 한 줄이다. 등산객들이 안내를 잘 따라서 혼잡함이 불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때론 과한 통제가 있기도 하지만, 연주대에서는 당분간 과해도 될 것 같다.

연주암 갈림길에서 어느 코스로 하산할지 지도 앱을 켜고 고민한다. 선배는  계단을 피하기 위해 능선을 타고 가다 향교로 내려가자고 한다. 선배의 기억 속 거친 길은 육봉능선인데,  설명은 자하능선(케이블카 능선)이다. 계곡으로는 많이 내려가봐서 나도 색다른 능선 길이 좋다.

KBS 관악산 송신소 입구를 지나 안양 방향으로 가다가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기로 한다. 서쪽으로 수리산 태을봉부터 수암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안산 청년 시절 관악산, 수리산, 바라산을 자주 다녔다.  오래전 직장상사도 만나고, 오래전 직장후배도 만나는데, 오래전 많이 다녔던 산을 다시 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남서쪽으로 수리산 태을봉에서 수암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길만 보고 걷다 보니 오솔길로 이어진다. 직관적으로 길이 아님을 알고 돌아 나온다. 마침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여쭤 보니, 친절하게 과천방향을 가르쳐 준다. KBS 관악송신소 주변은 샛길이 많아 길이 헷갈린다.
 
언덕을 오르니 자하능선(케이블카 능선) 입구의 헬기장이다. 옆쪽 바위 전망대에 오르니 완전히 다른 도시로 탈바꿈한 과천과 인덕원이 한눈에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는 재개발이 필요하지만, 꽃을 키우던 비닐 하우스, 도시와 도시를 구분하던 녹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의 모순에 공감하며 이웃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 마음에도 너른 녹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파트 옆 깔끔한 공원에 만족하는 것일까? 도심 주변의 산이 통계적으로, 심리적으로 충분한 녹지이기 때문일까?
선배와 나를 포함해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낡고 있는데, 집과 도시는 늙지 않고 새로운 도시로 영생한다.
 
헬기장 아래 바위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는데, 릿지길을 오르는 무리들이 우르르 올라온다. 
선배와 나는 혹시나 해서 과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맞는지, 험하지 않은지 물어본다. 그랬더니, 바위가 많아 위험하니 육봉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험한 정도는 참고할 만하지만, 엉뚱한 길을 안내해 준 것이다. 그리곤, 무리들은 일반 등산객이 다니지 못하는 험한 암릉으로 오른다. '산에서  잘못된 길을 알려주며, 장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진짜 초보자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배와 나는 서로 어이없어했지만, 그러려니 한다. 
 
자하능선(케이블카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주변 풍광이 참 좋다. 산 아래 공간의  난개발이 아쉽지만, 관악산 연주대와 육봉능선,  용마능선과 골짜기를 두루 볼 수 있고, 기이하고 멋있는 바위가 많다. 이제는 청계산, 바라산, 광교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올라오며 얘기했던 모락산도 잘 보인다.
자하능선(케이블카 능선)은  걸어서 산에 갈 정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다. 물론, 조금 조심해야 할 암릉 구간이 있다. 바위가 조금 무너져 내린 곳도 있다

우리가 알던(?) 그 인덕원이 아니다. 백운호수도 이제 아파트가 차지하고있다.
도시의 경계이자 미래를 위해 남겨졌던 그린벨트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과천 경마장 왼쪽은 이미 개발중, 앞 화훼단지도 곧 아파트 단지가 될 운명이다.
자하능선에서 본 관악산 연주대, 주능선.

 
능선을 따라 과천 구세군 방향으로 내려가다 계곡으로 방향을 튼다. 10여분 걸었더니 음식점이 나오고, 우리는 출발 5 시간 만에 산행을 끝낸다. 과천 맛집으로 가려다, 계곡이 있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고, 주변 등산객들이 분위기 좋게 앉아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여기가 바로 맛집이었다. 선배와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하지 못한 얘기를 이어간다. 다시 사4 (사당역 4번 출구) 원점으로 회귀하였다. 인생의 시간도 돌고, 관악산도 한 바퀴 돌아왔다.

관악산 연주대의 운세가 풀리는 기를 받았는지 모른다. 다만, 선배와 산행을 통해 따뜻한 기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
만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헤어지지만, 헤어진 사람도 우연한 일을 거치며 다시 만난다. 불확실함 때문에 더 소중하고 더 재미있는 삶이다.


#산행정보
산행지: 관악산 (632m) (서울 관악, 경기 과천)/
날 짜: 2026년 5월 9일
날 씨: 맑고 쾌청함
일  행: 2명 (맑은물, 박 선배)
산행코스: 사당역 4번 출구 - 관음사 옆 - 관악능선 - 관악산 정상 - 연주대 -
 자하능선(케이블카 능선) - 과천향교
산행시간: 4시간 55분 (휴식 포함, 9시 10분 ~14시 5분)
교 통: 수도권 전철 4호선

관악산 연주대경기 과천시 중앙동

#포토산행기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짧은 시간 꽤 높이 올라왔다.
아침 기운이 남아 있는 관악산 너머로 보이는 청계산
관악능선 국기봉을 향하여.
국기봉 가파른 암릉 오르며
관악능선 국기봉을 막 지난 지점.
멀리 관악산 연주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는 멀지만 완만한 코스다.
너 이름이 뭐니?
우면산(왼쪽), 구룡산과 대모산(오른쪽)
관악능선 서쪽 아래로 서울대, 건너편의 삼성산.
붉은빛이 도는 연주대, 뒤로 관악기상레이더, 마침 비행기가 지난다
지나 온 길을 뒤돌아 본다.
관악능선 동쪽 골짜기. 과천 너머로 청계산에서 바라산,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과천 서울랜드와 동물원을 품은 청계산.
올라 온 관악능선 전경이 보인다. 가운데 L타워 방향 초록봉은 우면산.
연주대 바로 옆에서 동쪽 조망, 과천, 청계산. 왼쪽 공간은 도시와 도시를 나눠 난개발을 방지하던 그린벨트였으나 곧 아파트 단지가 된다.
사람들이 많은 관악산 연주대
KBS 송신소 넘어 남서쪽 수리산. 태을봉, 수암봉을 알아볼 수 있다.
육봉능선, 자하능선 갈림길 부근 암봉에서 북쪽 조망. 왼쪽 연주대와. 오른쪽으로 케이블카 지지 구조물이 보인다
관악산에서 본 인덕원. 가운데 왼쪽으로 백운산-광교산, 오른쪽으로 얕은 모락산이 보인다.

 

관악능선 너머 멀리 북한산, 왼쪽 비봉능선-보현봉, 그 뒤로 백운대-인수봉, 오른쪽으로 도봉산이 보인다.
케이블카 능선으로 불리는 자하능선, 케이블카 줄이 보인다. 아래로 과천과 청계산.
자하능선에서 본 연주암과 연주대
내려가야 할 자하능선.
자하능선 기암괴석
자하능선 기암 괴석들
업무용 케이블카 운행 중
자하능선에서 바라 본 초록 관악산
관악산 자하능선 건너편의 용마능선
어느새 과천향교 근처, 관악산 물놀이터
실제로 그렇습니다. 각별한 주의 하시길.
과천 향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