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와 북한산 문수봉에 다녀온 다음날 또 다른 산행제안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최근에 수락산, 도봉산, 계방산, 축령산을 함께 다녀온 조피디다. 산을 좋아하고, 산에 자주 간다고 SNS에 알린 후로, 산행 제안이 많다. 기분 좋은 일이지만, 욕심이 생긴다. 산행 제안만큼 업무제안을 많이 받으면 좋을 텐데, 텅 빈 시간이 많아진다. 연초에 세웠던 목표 계속 걷고, 계속 가는 것을 자주 되뇌는 요즘이다.
조피디와는 일단 토요일에 우이동에서 만나 산행코스를 정하기로 한다.
토요일이 되었다. 우이역 2번 출구에서 조피디를 만나 도선사-용암문-대동문-정릉 코스를 제안한다. 토요일 백운대는 분명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피디는 별 의견 없이 그러자고 한다.
오랜만에 우이동으로 산행을 한다는 조피디는 '예전엔...'으로 말을 시작한다
"예전엔 여기에 **이 있었는데... 예전엔 데크길이 없었는데... 예전엔 도선사 아스팔트 길이 힘들었는데...'
"형 저도 3년 전에 그랬어요. 10여 년 만에 왔더니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잠시 후, 도선사옆 주차장을 지난다.
조피디 "어? 여기 매점 어디 갔어? 예전엔 매점에서..."
" 예전엔이란 말을 많이 쓰면 고인 물입니다. 하하"
도선사 가는 길로 많이 다녔지만, 도선사 코스는 20년 전에 한번 갔었나? 도선사 주차장에서 하루재와 백운동암문을 지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맞다면 오늘이 두 번째 도선사 길이다.
도선사 앞을 지나 용암문 오르는 길은 적당한 그늘, 적당한 초록 숲, 적당한 암릉 경관이다. 어느 순간 뒤돌아 보니 고도감이 느껴진다. 조피디와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앞서 걷다가, 심심해지면 적당한 대화 간격을 유지한다. 험한 코스는 아니지만 산은 산이다. 오르막에 지칠 무렵 용암문에 도착한다. 도선사에서 한 시간 남짓, 우이동에서는 2시간이 걸렸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아직은 제시간에 맞게 가고 있다. 용암문 옆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대동문으로 출발.
조피디와는 시시콜콜한 일상과 산 얘기를 나누다 정치 얘기까지 이어진다. 조피디는 얼마 전 끝난 지방선거에 출마...
는 아니고 출마자 보다 더 희귀한 모 진보정당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언론을 통하거나 온라인으로만 듣는 양당 정치는 별로지만 직접듣는 진보정치 얘기는 생생하다.
당세가 기운 모 진보정당은 들끓는 열정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열정으로 선거를 치렀나 보다.
멀리서 보이는 진보정치 쇄락의 원인은 경직성이다. 콘크리트 레미콘 같이 굳어가는 사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진보정당에게 기득권의 반발, 비판과 비난은 숙명이다. 이에 대한 당원들의 스트레스성 대응이 반복되며 앞으로 나갈 동력도 방향도 희미해지고, 이번에는 정책도 아쉬웠다. 어차피 당선되지 못하는 선거에서 진지한 선거운동 보다, 서울 기득권과 부동산 투기시장 해체를 유쾌하게 주장하는 게 나을 뻔했다.
그런데, 조피디에게 직접 들어보니 남아 있는 이들이 외부 비판을 더욱 버거워한다. 비판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인데, 이제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무관심해하는 진보정당이 되는 것일까?
진보정당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선택지에서 사라지니 극우 논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인간의 생존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경제활동은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강자를 인정하고 콩고물을 확보하는 것일 테니까.
대화와 사유가 섞으며 성곽을 따라 걷는다. 용암문에서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숲이 짙푸르게 우거지고 있다.
여러 번 쉬며 천천히 걷고 있지만 또 쉬자는 조피디. 오늘 코스는 좀 길지만 시간이 널널하여 다행이다.
이제 칼바위능선 갈림길이다.
"조금 더 편한 보국문 계곡길로 갈래요? 바윗길이 서너 곳 나오는 칼바위능선 넘을래요?". 형식적인 설명 후 나의 선택은 칼바위능선이다.
칼바위 능선 석가봉에 처음 올라 본다는 조피디는 풍광에 만족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사방이 뚫린 봉우리이기도 하고, 백운대, 인수봉, 도봉산이 펼쳐져 있는 풍관 명소이기도 하다. 조피디와 함께 주요 산 찾기를 한다. 남산을 기점으로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을 찾고, 조피디는 수락산, 불암산을 알아본다.
서남쪽 큰 구조물이 반짝인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일까? 어디 보자. 여의도 빌딩숲 지나 한강 건너 둥근 모양이다. 고척돔이 확실하다. 서쪽으로 계양산까지, 지난주에 이어 초여름 대기질이 좋다.

두어 번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나 칼바위 갈림길에 도착한다. 직진하면 문필봉너머 정릉생태체험관으로 가는데, 더 쉬운 청수계곡길로 내려간다. 함께 걸을 때는 내가 가고 싶은 길 보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택하라는 산신령의 조언이다.
주변으로 많은 벌레들이 툭툭 튀어 다닌다. 꼽등이인 줄 알았더니 갈색여치다. 곤충은 그 자체로 생태계의 일원이고,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는데, 요즘은 대량으로 발생하는 곤충들이 있어 걱정이다.
넓적 바위를 만나며 험한 구간을 끝낸다. 출입이 허용된 청수계곡 상류 100미터 지점으로 이동하여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쉰다. 시원한 청수계곡 기운에 온몸이 오싹하다. 여름 산행하면 힘들게 걷고 땀나는 이미지가 있지만, 물가에 앉아 쉬는 맛, 봉우리에 올랐을 때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의 맛은 중독성이 있다.
청수 2교를 지나며 이제 더 이상 오르막길은 없다. 그대로 복개주차장 복원 공사 중인 정릉탐방안내소까지 한걸음으로 내려온다. 조피디의 발걸음이 느려서 시간이 많이 걸린 줄 알았지만, 그래봤자 예상보다 30분 더 걸렸다. 괜한 조바심이었나 보다.
맛집 없는 정릉동에서 산행 뒤풀이를 하며 주변에 보이는 정릉골 재개발 얘기를 나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15년간 투기 위주로 진행되어 와서 이제 다른 해법이 없다. 북한산 바로 경계지점이라 생태적 완충구역, 더 많은 규제가 있었어야 하지만, 주택 공급론에 자연은 침묵할 뿐이다. 조피디와 다음 여름 산행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산행정보
산행지: 북한산. 도선사-칼바위-정릉동 (성덕봉 약 600미터, 서울 강북구-종로구)
날 짜: 2026년 6월 13일
날 씨: 맑음
코 스: 우이탐방안내소 - 도선사 - 용암문 - 대동문 - 칼바위 석가봉 - 청수계곡 - 정릉탐방안내소
시 간: 5시간 10분 (10시 10분 ~ 15:30)
일 행: 맑은물, 조피디
교 통: 경전철 우이역, 북한산 정릉탐방지구 버스
#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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