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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기] 산행. 힘들면 쉬었다 가자

종로에서 보이는 북한산 보현봉 일선사 (2026.7.9)

by 걷는맑은물 2026. 7. 10.

장마 양상이 예전과 다르지만, 무더위를 앞두고 장마가 시작돼서 다행이다.
잠시 장마비가 그친 오후, 적당한 습도와 바람에 생기가 빽빽하게 들어찬 북한산으로 들어간다. 청수계곡은 차가운 물소리로 가득 차 있고, 흙과 나무의 향기가 코를 지나 가슴 깊이 들어온다.

오늘은 마음을 비우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디까지 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블로그에 산행 후기와 사진을 올리는데 아직 욕심이 많다.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알리고 홍보한들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구독자가 늘면 무엇이 좋을까? 광고를 유치하면 숫자에 속박된다. 그러니 오늘 비움의 최우선 목표는 블로그 후기 쓸 생각을 내려놓고, 사진을 덜 찍는 것이다. 

장마비로 아름다운 계곡이 된 북한산 정릉 청수계곡

 
 외부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 산행을 즐기는 것이 최고다. 산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면 된다. 기암괴석과 절경을 만나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나무와 풀과 꽃을 만나고, 새와 곤충을 만난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만나고, 나의 에너지와 의지를 만나고, 나의 허물과 여전히 나의 일부인 욕심을 만난다.

이 모든 것을 만나는 산행은 혼잡하다. 아무것도 만나지 못할 때가 사실은 마음을 비우는 길이다. 발 가는 대로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경우가 있다.

4개월 전 하얀 눈의 기억과 청딱따구리의 울음소리가 교차한다. 양쪽 계곡의 물소리와 몇 년 전 들었던 기억 속 물소리가 겹쳐진다. 하얀 눈이 쌓여있던 칼바위능선, 산성 주능선이 안개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기억 속에는 남아있다.

 

2026년 7월 초 vs. 3월 초 대비


일선사가 가까워오며 낮게 깔린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숲이 더 어두워져 으스스하다.
"쩔거덩"
일선사 마당의 돌을 잘못 밟아 울린 소리에 내가 놀란다. 비우고 본질을 만나려다 괜히 흰옷 입은 무서운 존재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

일선사의 얕은 담은 전망대지만 짙은 안개구름 때문에 서울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기분이면 됐다고 돌아서려는데 암수 딱새가 눈에 띈다. 딱새는 광화문 풍광보다 벌레가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딱딱 소리를 내던 수컷이 날아가고 암컷 혼자 있다가 다시 수컷이 돌아왔다. 주변에 둥지가 있는 것 같다.

안개구름이 바람에 날려가더니 구름 아래로 희미한 무엇이 보인다. 서울이다. 짙은 회색구름 아래로 안개에 휩싸인 푸른빛의 남산이 있다.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서울 도심이 보이다 안 보이다 한다. 사진을 덜 찍겠다는 다짐이 멋진 풍광 앞에서 무너진다. 90년대 김현철 노래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가 들리는 듯 하다. 참 괜찮은 노래다. 짙은 구름이 몰려와 더 이상 풍광이 열리지 않는다.

 

보현봉 일선사는 신라 말 창건하고, 고려시대에는 보현사라고 하였다. 조선 초에는 지리적으로 이곳을 한양수비의 요층지로 판단하여 중시함.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소 후 1600년 무렵 한양을 지키기 위한 성곽 수호사찰로 인정되어 왕명으로 복원 되게 된다. 1940년 화주자인 김만선행이 보현굴이 있는 곳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중창하면서 관음사로 바꾸게 되었다. 1957 년에 불교정화운동 때에는 당시 일초스님이었던 시인 고은이 이곳에 승려로 주석하면서 절 이름을 자신의 '일'과 도선국사의 '선'을 합쳐 '일선사'로 바꾸게 되었다. (일선사 소개 안내판 내용)
일선사에서 본 백악산, 광화문 전광판이 거대한 폰 화면 같다


보토현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후두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을 폈지만 곧 그친다. 평창동 홍제천 상류 골짜기 물소리가 우렁차다. 보토현 능선 바위 봉우리에 올라 풍광을 본다. 어느 방향이든 다 좋다. 여름 산기운이 청수계곡을 따라 아래로 흐른다. 산 등성을 따라 증발되는 안개처럼, 도시를 만나며 산기운이 증발되고 만다.

형제봉에 오를까? 그냥 내려갈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풍광이 더 좋은 형제봉으로 향한다.
빽빽한 건물 위로 정릉이 펼쳐져 있다. 구름 아래 평창동 저택들은 더 하얗게 보인다. 형제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인디언 바위, 백악산, 인왕산, 안산까지 구불구불 살아있다.
갈라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쪽두리봉을 비춘다. 보현봉으로 안개구름이 모였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보토현 능선에서 본 보현봉


골짜기 아래가 어둑어둑해진다.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말고 빨리 내려가야지.'
빨리 걷지 말고 잘 보고, 잘 듣고, 더 많이 만나며 가겠다는 다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몇 시간이고 더 머물고 싶던 형제봉에서 마음도 사라졌다.

비 온 뒤 물에 젖은 가지는 온통 검은색이다. 회색, 흑갈색 나무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멧돼지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최단코스를 따라 야생화 단지로 내려오는데, 남자 사람을 마주친다. 째려보는듯한 눈빛을 마주하니 소름이 끼친다. 우산을 꼭 쥐고 지나친다. 남성으로 태어나 다행이다.

청수계곡 물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들린다. 이 소리를 들으려 산책 나온 주민들이 많다. 3시간 만에 출발장소로 돌아온다. 비우지는 못하고 여전히 서둘렀지만 풍광이 막혀 더 멀리 떠났다 온 기분으로 3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정보
구 간: 보현봉 일선사 (서울 성북구, 종로구)
날 짜: 2026년 7월 9일
날 씨: 비온 후 흐림
일 행: 맑은물 홀로
코스: 정릉 청수계곡 - 대성능선 - 일선사 - 보토현능선 - 형제봉(동생봉) - 정릉 청수계곡

소요시간: 3시간 (16시 40분 ~ 19시 40분)
교 통: 도보 


#포토산행기

북한산 대성능선에서 본 형제봉
화강암의 풍화작용에 의한 토르

 

2026년 7월 vs. 3월. 같은 공간, 다른 풍광
일선사 앞 딱새 부부
북한산 일선사에서 본 안개 낀 서울
서서히 안개 구름이 움직이더니
서울 남산이 보인다
사진에 모든 감각, 느낌이 담기지 않아 다행이다
일선사 담벼락, 구름이 서울을 가렸다.
왼쪽 보현봉, 오른쪽 반달가슴곰 모양 바위 위로 일선사가 있다
보토현능선에서 본 계양산
일선사

 

 

보토현 능선의 큰 바위
보토현 능선 어느 바위에서 본 서울 동쪽
북한산성 주능선의 성덕봉
보토현능선에서 본 보현봉, 오른쪽으로 일선사가 보인다
보토현 능선에서 본 청수계곡(외). 초록기운이 아래로 내려간다
보토현 능선에서 본 망우산, 용마산, 그 뒤로 구름과 닿은 예봉산, 검단산
형제봉 오르는 길 아래는 성북구 일대
평창동쪽 동령폭포 상부
평창동.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느낌
북한산 형제봉에서 본 서울 성북, 오른쪽으로 내부순환 도로
형제봉에서 본 족두리봉
형제봉에서 본 비봉 (뒤쪽 능선)
형제봉에서 본 보현봉
형제봉 아래에서 본 문필봉
불암산
청수계곡
북한산 청수계곡
북한산 청수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