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산으로 이끈 것은 더불어한길이라는 산행모임이다. 2001년 봄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춘천 삼악산 산행 후, 함께 혹은 홀로 약 250번이 넘는 산행을 하였다. 산행 초기에는 여럿이 함께 산행하는 게 좋았다. 나 홀로 산행은 겉멋 들어 청승 떠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시간이 흘렀다. 전국 산을 모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정이 생기고, 일을 하면서 소중한 삶 우선순위가 바뀌어 왔다. 점점 혼자 산행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어쩌다 함께 산행을 하더라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산행을 즐기게 되었다.
더불어한길은 이제 산행 모임이 아닌 친목 모임이다. 두 달 전부터 무주 까마구 집에서 모임을 하기로 했고, 만나는 김에 덕유산 산행을 계획하였다. 마침 카풀로 내려가는 포비도 시간이 되어 함께 산행을 하게 되었다. 산행 경로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올라 향적봉을 거쳐 오수자굴을 지나 구천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예상시간은 4시간 30분! 예전엔 곤돌라 대신 무조건 걸어 오르고 내려와야 산행이라는 자존심이 있었는데, 이젠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되었다. 막상 곤돌라를 타려니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지? 대기 시간이 길지 않을지? 늦으면 어떤 코스를 다녀올 건지? 사전 조사가 부실하다. 철쭉꽃이 필 계절이고 주말이라 혹시나 곤돌라 대기시간이 길지 않을까 우려하며 일단 무주리조트 도착하여 결정하기로 한다. 1시 30분쯤 도착하여 표를 끊었더니 곤돌라는 빈 채로 운행하는 게 더 많을 정도로 한산하다. (참고로, 다음날 일요일에 곤돌라를 탄 팀은 예약을 했고, 기다릴 정도는 아니지만 곤돌라 타는 분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포비네 가족 2, 우리 가족 3, 합 5명이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르니 지난겨울 불 탄 상제루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문화재급은 아니지만 멋진 모습이었는데 안타까우면서도 산불로 번지지 않아 다행이다. 민들레가 피어 있는 상제루 앞마당을 지나 탐방지원센터에서 향적봉까지 산행신청을 한다. 향적봉에 산행객들이 지나치게 많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 혹은 현장에서 신청을 하고 들어갈 수 있다. 이날은 탐방객이 많지 않아 현장접수가 가능하였다. 해발 1500미터 가까이 되는 지역이라 기온이 서늘하다 못해 싸늘하다. 안개가 올라와 풍광이 좋지 못하지만, 높은 산의 기분을 느끼기엔 최적이다.
5월 말 향적봉 가는 길에는 잎이 넓적한 식물 박대가 많다. 목재 데크 등산로 주변에는 식물이 다양하게 자라는 것 같지는 않다. 철쭉은 꽃망울이 거의 보이지 않아 덜 핀 건지, 이미 진 건지 구분이 어렵다. (다음날 확인해 보니 아직 안 핀 것) 2년 전 겨울에 화려한 상고대를 입고 있던 주목은 5월에는 주변과 초록동색으로 어울려 있다. 어딘가에서 맑고 고운 새소리가 들려오는데, 아무래도 휘파람새 같다. 주목과 몇 송이 핀 철쭉 앞에서, 아래쪽 조망이 트인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며 담소를 나누며 걷다 보니 탐방안내소에서 20분 만에 향적봉에 도착한다. 겨울보다 훨씬 한적하여 정상석 인증사진을 위한 긴 줄은 없다. 정상석 뒤 실제 바위로 이루어진 향적봉에 오르니 바람이 더 시원하다. 아쉽게도 안개구름이 걷히지 않아 주변 산과 계곡 하늘 조망은 없다.
향적봉을 내려오니 대피소와 백련사로 바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일행 중 누군가 이 길로 곧바로 내려가자고 한다. 걷는 즐거움과 좋은 풍광보다는 가장 빠른 길로 산행하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오수자굴로 내려가자고 설득해 본다. 조금 더 긴 코스지만 덜 가팔라 덜 힘들 거라고 안심시키고 모두 함께 중봉방향으로 향한다.
대피소에서 중봉까지는 1km거리인데, 언덕길에 가까운 편한 길이다. 주변 봉우리, 아래쪽 조망은 여전히 안개구름에 막혀 보이지 않지만, 특출한 모습의 주목들과 이름 모를 나무들, 고지대 풀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중봉 덕유평전에는 향적봉 주변보다 더 많은 휘파람새가 울어대고 있다. 일행 모두 휘파람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휘파람새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데, 포비네 재*가 가장 먼저 휘파람새를 찾고 위치를 설명해 주는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나뭇가지 사이에 뭔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있을 때 그곳을 계속 보고 있으니 작은 휘파람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체구에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휘파람새, 무엇이든 하나 잘하는 게 부럽다.
중봉에서 덕유산 주능선 갈림길까지 가벼운 내리막길이다. 여기에서 남덕유산까지 굽이치며 뻗어나가는 덕유주능선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주능선을 벗어나 오수자굴 방향으로 향한다. 안개구름 사이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데 다행히 빗방울이 더 굵어지지는 않는다. 고도가 조금 더 낮아지니 향적봉-중봉에서 보이지 않던 철쭉이 보이는데 연분홍 꽃잎과 연초록 잎이 참 아름답게 피어 있다. 내리막이 점점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멀리서 계곡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덕유 주능선이 해발 1400여 미터 이상이니, 어느 코스든 걸어서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오수자굴로 오르는 코스는 꽤 힘이 드는 코스 같다. 물소리가 더 커질 무렵 오수자굴에 도착한다. 실제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은 아니지만 입구가 크고 비바람은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오수좌라는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가 여럿 전해져 온다고 한다.
오수자굴을 지나면서부터는 멀리 들리던 재자골 계곡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느긋하게 계곡길을 즐기며 내려가려는데, 까마구가 전화를 걸어와 '백련사 마지막 셔틀버스가 5시 5분에 출발하니 서둘러'라고 한다. 계곡 옆길이 처음에 조금 험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쳤지만, 나뭇잎을 타고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계속 떨어지니 서두르기 힘들다. 날씨나 지형 같은 장애물 보다 발걸음을 늦추는 요인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관중이라는 고사리과 식물이다. 커다란 관중이 숲 속에서 초록 손을 흔드는 신비로운 모습에 눈길을 안 주고 걷기 쉽지 않다.
백련사가 가까워 올 수룩 계곡이 점점 넓어지고 계곡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는데 나만 뒤처져 있다. 하지만, 백련사 도착하기 500미터 전 이미 셔틀버스 출발시간이 지났고, 앞서가던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백련사 입구에 함께 도착한다.
모두 체력이 방전된 줄 알았는데, '백련사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오겠냐?'며 포비가 앞장서니 모두 따라 오른다. 비 온 뒤 텅 빈 백련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니 딱 맞춰 긴급구조대(?)가 도착해 있다. 여럿이 함께 간 산행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떠들고 웃으며 즐겁게 산행을 끝낸다.
(다음 날에는 구천동 월하탄에서 호탄암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아래 산행 사진 참고)
#산행정보
산행지: 덕유산 (1614미터, 전라북도 무주군)
날 짜: 2025년 5월 24일
날 씨: 안개구름과 빗방울
일 행: 5명, 맑은물(가족 3명), 포비(가족 2명)
산행 코스: 리조트 - 설천봉 - 향적봉 - 중봉 - 오수자굴 - 백련사
산행시간: 4시간 40분 (13시 50분~17시 30분)
교 통: 운전(포비네 카풀)
#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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