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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삶. 힘들면 쉬었다 가자

북한산 최고 비경 숨은벽 넘어 우이동으로 (2025.6.17)

by 역주행맑은물 2025. 6. 17.

불친절한 산행 블로그의 친절한 사용 안내서

 

아내로부터 '입산 금지' 경고를 받았다.
"산에 간다, 산에 간다 입으로만 산에 가지 말고, 가고 싶을 때 가도 돼. 자꾸 입으로만 산행하면 정말 못 가게 한다"

자주 산행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입으로만 산행을 하는 이유가 뭘까? 
첫째, 함께 산행할 사람이 없다.

둘째, 교통편 찾기 힘들다.
셋째, 시간이 없다. 


이것은 사실 핑계일 뿐이다.
진짜 이유는 아침에 배낭 메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어디든 간에 일단 집을 나서면 산행을 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 산행을 못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산에 간다고 하는 원인은 나에게 있다.

아내에게 입산금지 경고를 받다


 한동안 가뭄이었다가 주중 이틀 동안 50mm 정도 비가 내렸다. 비 개인 아침 숲의 향기와 물이 철철 흐르는 계곡이 떠 오른다. 아내에게 산 얘기를 하려다가, 배낭을 매고는 목적지 없이 그냥 집을 나섰다. 산행 생각 10번 보다 한 번의 발걸음이 의미 있어지는 순간이다.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북한산 숨은벽을 목적지로 정한다. 암릉이 많아 어렵다고 예기를 들어 망설이던 코스다. 오늘 숨은벽 능선 산행을 하면 이제 가보지 않은 북한산 주요 산행 코스로는 오봉코스, 육모정 정도가 남게 된다.

 
불광동에서 한 번, 구파발에서 또 한 번 버스를 환승하여 고양시 효자 2통 정류소에 내리니 주변이 한적하다. 지난겨울 북한산 둘레길 걸을 때 지났던 곳이라 쉽게 산행 입구를 찾는다. 인터넷 산행정보에는 국사당 근처에 주차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으나, 주차금지 안내판과 함께 주차 방해물이 설치되어 있다. (2025년 6월 기준, 숨은벽 아래 국사당 주변 주차 불가)
 
국사당이 있는 밤골은 밤나무꽃 특유의 정향이 가득하다. 비릿하여 별로라고 생각해 온 밤꽃 향에 오늘은 약간의 고소함과 향긋함이 섞여 있다. 발효빵 향기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다. 하기야, 밤꽃 향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졌으니 전혀 색다른 향기일 수는 없다. 그냥 약간의 음란한 선입견이 밤꽃 고유의 향을 제대로 맡지 못하게 막아왔던 것 같다. 나이 먹을수록 선입견을 버리자.

딴생각을 하다가 정신 차려 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밤골 계곡이다. 물소리, 산새 소리, 헬리콥터 소리가 뒤 섞여 있지만 으뜸은 역시 계곡 물소리다. 기대한 대로 멋진 밤골 계곡 풍광에 빠져 가려던 능선을 못 타고 계곡으로만 걷고 있다.  지도 앱을 켜고 10여분 앞뒤로 헤매다 겨우 길을 찾는다. 가파른 등산로를 찾아 능선으로 오르니, 둘레길에서 올라오는 길이 나타난다. 국사당에서 사기막골 방향 둘레길을 따라가다 숨은벽 길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나무 그늘 길을 따라가다 이어지는 너덜 바위 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오른다. 딴생각하며 자동모드로 발걸음을 옮기며 힘을 비축한다. 능선길이 조금 가파르고 초여름 날씨가 습하고 덥지만, 밤골 계곡 풍광과 물소리가 시원하다. 사기막골 방향에선 군인들 훈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숨은벽 능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섞이지 않는다. 가끔 국립공원 헬리콥터 소음이 모든 소리를 압도할 뿐이다.

숨은벽 숲 길은 깔딱고개를 지나 암릉으로 이어진다. 뜨거운 햇살에 숨이 점점 가빠진다. 자동걸음 모드의 다리 체력 보다 정신력을 발휘할 시점이다. 적당한 힘이 필요할 땐 딴생각으로 힘든 것을 분산할 수 있지만, 많이 힘들면 의지가 필요하다. 그까짓 거 표고차 1000미터 넘는 산도 많이 다녔는데, 이 정도 코스는 이 순간만 이겨 보자며 일부러 쉬지 않고 오른다. 마침내 주변이 트인 암릉 위에 오르니 바람이 불어와 열을 증발시킨다. 더운 날이든, 안 더운 날이든 바람 부는 여름에는 산행하는 맛이 있다.

 

가야 할 길. 숨은벽 능선이 앞쪽으로 보인다.


암릉을 따라 더 오르니, 숨은벽 봉우리와 백운대, 인수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금까지 의상능선이 북한산 제1 경이라 생각했는데, 숨은벽 능선과 공동 1경으로 해야겠다. 설악산의 멋진 능선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 밤골계곡 방향으로 수십 미터 낭떠러지, 왼쪽으로 너르게 펼쳐진 상장봉 능선과 사기막골, 그 뒤로 도봉산 봉우리들.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이 흰 종이라면, 두둥실 떠 있는 흰구름은 이 풍광을 완성하는 화룡정점이다. 비록 1000미터를 넘는 설악산 봉우리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험하면서 아름다운 산세는 설악산 축소판 느낌이다.
숨은벽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진 구멍바위(혹은 해골바위)를 쓱 한번 바라보고는 전진한다. 앞쪽으로 보이는 숨은벽의 수십 미터 암벽등산 코스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걷기만 하는 나는 낭떠러지 근처에만 가도 다리가 긴장되는데, 대단한 강심장들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이 흰 종이라면,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은
풍광을 완성하는 화룡정점이다.

압벽등산 코스 바로 아래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안전한 우회로를 통해 밤골계곡 최상부로 내려선다. 밤골계곡으로 내려가 사기막골이나 국사당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나는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고개를 넘어 우이동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숨은벽 암봉 아래로 내려섰다 오르는 길은 오늘 2번째 만나는 깔딱 고개다. 숨은벽 암봉과 백운대 암릉이 양쪽을 막고 있는 가파른 길은 또다시 설악산 느낌으로 다가온다. 꽤 가파른 길이라 힘은 들지만, 설악산 간접 체험이라는 기분으로 오른다. 다행히 바위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약수가 있다. 수질검사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먹어도 될 것 같아 서너 모금 마시니 식도까지 흘러내리는 땀이 씻겨 내려간다. 
 
마지막 힘을 모아 숨은벽, 백운대 사이 고개를 넘으니 앞쪽으로 도봉산, 수락산과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보인다. 지도상으로는 예상한 풍광이지만, 이렇게 공간이 한 번에 바뀌니 신기한 느낌이다. 

너덜지대 바위를 밟으며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백운대 바위가 위협적일 정도로 거대하고, 왼쪽으로는 큰 바위얼굴 같은 인수봉이 보인다. 북한산의 대표 격인 두 봉우리를 바로 아래에서 보니 더 웅장하다. 백운대 봉우리에서 떨어진 듯한 큼직큼직한 바위가 있는 등산로를 쭉 따라가니 백운동암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백운대 오르며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그 궁금증이 풀린다. 백운대와 인수봉의 사이길의 비밀 코드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백운동암문에서는 북한산성계곡, 북한산성 능선으로 갈 수도 있지만, 오늘은 빠른 하산을 위해 우이동으로 향한다. 우이동으로 하산은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백운산장은 공사 중이고, 백운산장 아래 졸졸졸 흐르던 창릉천 최상류는 내려갈수록 조금씩 수량을 늘리며 작은 폭포를 만들어 낸다. 인수봉은 오후 햇살을 받아 신성스럽게 보인다. '갓(God)수봉'이란 말이 떠올라 혼자 웃어 본다. 인수봉을 감싸고 있는 숲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색감이다. 말 그대로 색다른 느낌이다.

하루재를 내려오며 만나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도선사 찻길 대신 한 번도 안 가본 왼쪽 능선길로 들어선다. 익숙한 탐방로 대신 한 번도 안 가본 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능선길은 험하지 않은 길이 이어진다. 계곡 어딘가? 혹은 맞은편 능선 어디일까? 뻐꾹뻐꾹 아련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예상보다 긴 코스에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 영봉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소귀천 계곡만 우이천의 상류라고 생각했는데, 영봉에서 우이동으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서 이렇게 큰 물소리가 들릴 줄 몰랐다. 산은 생각보다 넓고 산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고, 나는 생각보다 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점점 커지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오니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선운교가 있다. 

백운천을 따라 우이 구곡 명승지인 월영담, 탁영암, 명옥탄을 거쳐 우이역에 도착하여 산행을 끝낸다. 명옥탄 근처에서 원앙 두 쌍을 본 것은 훌륭한 산행 마무리였다. 
북한산의 모든 코스를 다 산행하면 북한산에 대한 신비로움이 사라지게 될까? 숨은벽, 저녁 햇살 받은 인수봉의 또 다른 모습을 보니, 곳곳을 다녀도 북한산은 오래도록 신비롭게 남아 있을 것 같다.


#산행 정보
산행지: 북한산 숨은벽 코스 (고양시, 서울시)
날 짜: 2025년 6월 17일
날 씨: 맑음
일 행: 맑은물 홀로
코스: 밤골탐방안내소 - 숨은벽 - 백운동암문 - 하루재 - 우이동 (약 9km)

소요시간: 5시간 15분 (13시 25분 ~ 18시 40분)
교 통: 효자 2통 정류소 - 경기 37번  버스, 우이동 - 우이신설 경전철


#포토 산행

고양시 효자동, 밤골(국사당) 입구
밤골 입구, 이제 주차 금지 (2025년 6월 현재)
국사당 (전통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곳)
밤골 계곡
밤골 계곡
밤골 계곡
밤골 계곡
잠시 길을 잃었으나 숨은벽 오르는 능선을 찾았다
숨은벽 능선 가는 길에 본 북쪽 방향
숲길, 계단길이 끝나고 가파른 암릉길 시작
백운대(우), 숨은벽(중), 인수봉(좌), 얖으로 계속 볼 풍광
숨은벽 방향으로 사람들이 많다. 가야 할 길
여름 산행이 아름다운건 구름 때문이다. 멀리 도봉산 방향
영봉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 정상부, 오봉
인공 너덜지대 쭉 올라보자
소나무가 있는 어느 봉우리.
백운대(우), 숨은벽(중), 인수봉(좌)
숨은벽 능선, 멀리서 보면 한 봉우리 같지만 여러 봉우리가 첩첩.
앗, 뒤늦게 해골바위 발견
줌으로 당겨 본 해골바위
영장봉인듯(?), 뒤로는 상장능선과 도봉
오리바위라는데, 보기 나름
멀리서 보면 바위가 좀 많은 능선인데, 직접 들어서면 참 다채 롭다. 이것이 산이다.
인수봉의 뒷 모습
숨은벽 능선에서 북한산 쪽 조망
숨은벽 릿지 길이 눈 앞에 있다
오르며 뒤 돌아 본 길. 그냥 걷기만 하면 크게 험하지 않은데 은근 긴장 되는 구간.
백운대를 찾았다. 까마귀는 쉽게 오르는 곳.
숨은벽에서 백운대, 장군봉 방향
아직 갈 암릉 길이 남았다
고래 바위 인정.
숨은벽과 인수봉
이름은 정하기 나름, 어쨌거나 멋진 바위
계속 같은 뷰 일 수도 있지만, 멀리 도봉산이 보이죠? 오른쪽 멀리 수락산.
걸어서 오를 수 있는 곳 상당히 가까워 졌습니다
숨은벽 능선에서 걸어 갈 수 있는 마지막 바위
마지막 바위에서 북한산 북쪽 방향. 중간 상장능선 뒤로 도봉산
마지막 바위에서 본 밤골 전경
마지막 바위에서 본 숨은벽 암벽 코
숨은벽 능선 암벽 타는 사람들
보통 등산객은 출입금지. 반대로 말하면 숨은벽 여기까지는 걸을 만 합니다.
아래에서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밤골 최상류와 백운대가 만나는 곳
가파른 오르막인데도 백운대 아래라 물이 졸졸 흐른다
밤골 최상류에서 백운대 옆으로 오르는 길, 졸졸 물이 흘러 좋다
밤골계곡 발원지가 되려나? 맑고 차가운 샘이 있다.
숨은벽 방향
숨은벽에서 백운동암문 가는 길, 가파른 길이라 힘은 들지만 주변 풍광이 좋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
뒤돌아 본 숨은벽 상단
숨은벽을 통해 백운대 오르는 길에 만난 고사리
백운대-숨은벽 고개마루 거의 다 왔다
뒤돌아 보니 설악산 같다
숨은벽에서 백운봉암문 가는 고개에서 바라 본 노고산
백운대 아랫쪽 어느 바위 틈새
드디어 숨은벽에서 백운대 아래 고개를 넘고 있다. 강북이 보인다
숨은벽에서 백운봉암문으로 가고 있다
오른쪽 백운대 아랫부분
백운대를 올려다 보니
인수봉 아저씨
인수봉 아저씨를 당겨 보았다
백운대 아랫부분
백운대 아래 등산로에 떨어졌던 현대 사회 폐기물
백운봉암문 윗쪽에서 만경대와 노적봉 틈새 뷰
백운봉암문에서 바라본 만경대
백운봉암문
백운봉암문에서 도봉구 방향, 희미하게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백운산장 지나 시작된 창릉천 상류
창릉천 상류. 사기막골을 지나 밤골, 백운동계곡, 삼천사x진관사 계곡을 합류하여 창릉천이 된다.
오후 햇살을 받아 신비로워진 인수봉
인수봉 인수암
하룻재에서 내려 갈 길, 우이동 방향
하루재 지나 내려오다 문득 눈에 들어 온 남쪽 어느 봉우
오른쪽은 도선사 갈림길 방향, 왼쪽은 능선
백운대2 능선길 따라 오다 얼핏 보이는 인수봉이 햇살과 함께 예술이다
육모정고개 능선
오른쪽 길로 내려왔다. 보기에도 더 험하
북한한 우이구곡 6곡, 월영담
월영담 뒤로 햇살머금은 인수봉
북한산 우이구곡 중 탁영암. 조금 더 복원해도 괜찮을 듯.
북한산 우이
북한산 우이구곡 제8경 명옥
명옥탄 아래 원앙 커플
우이구곡 9경 재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