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산에 가고 싶어 할까?'
산행을 하며 가끔 의문이 생긴다.
걷기가 좋으면 평지를 많이 걸으면 되잖아?
여행이 좋으면 관광지만 다녀도 되는데?
자연이 좋으면 풍광 좋은 곳으로 나들이만 하는 건 어때?
사람이 좋다면 왜 혼자 산에 가?
산에 가는데 답은 없다.
산행 명분을 만들어 갈 때도 있지만, 요즘은 산행하고 싶은 마음이 집에 있으려는 관성을 이길 때 산에 간다. 산에서 사색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단순히 풍광을 즐길 때가 많다. 정상에서 내려보는 조망이 좋아 오르고, 정상에서는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산한다. 구름처럼 오르고 물처럼 내려온다.
영월 고향집에 내려가는 김에 산행 목표를 세웠다. 비 예보가 있는 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니 갈 수 있는 산이 제한적이다. 영월 읍내에서 바로 오를 수 있는 '발산'을 목적지로 정하고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탄다. 낮부터 비가 오면 못 가는 것이고, 오후 늦게 비가 내리면 서둘러 다녀올 수 있다. 오늘은 목적지와 일정 선택이 간단하다.
영월역을 나와 동강 둑에 오르니 멀리 강건너로 삼각형 모양의 발산이 보인다. 오늘 가려는 산이다. 발산을 마주 보고 있는 해발 799.5m 봉래산은 정상에 천문대가 있어 찻길로 몇 번 올랐었다. 모노레일 공사가 끝나면 등산하는 산이 아닌 여행지가 될 운명이다.
해발 670여 미터 발산은 지나다니며 종종 봤지만 산행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뾰족한 발산 정상에 오르고 싶어 졌다.
단종의 영정을 모신 영모전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하필 오늘 휴일이다.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영모전으로 걸어간다. 9월 1일에 흐린 날인데도 길바닥이 후끈후끈하다.
영모전 뒤 산림청 조경숲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고층 건물이 없으니 영월 읍내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안부에 오르면 장릉 쪽 삼호아파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난다. 발산 정상 1.9km 표지판이 있다.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예상외로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다. 조금 오르면 급경사로 바뀔 줄 알았는데, 편한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자동차 소리가 조금씩 커져 주위를 살피니 38번 국도 터널이 발산 아래를 지나고 있다. 가끔 오는 등산객은 잠깐 시끄러움을 느끼면 그만인데, 38번 국도 근처 주민들은 어느 정도 소음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38번 국도가 영월, 정선, 태백 주민들에게 시간 단축의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맞지만, 소음 피해를 줄일 방음벽을 추가하면 좋겠다. '그러려니 하는 환경피해'를 줄여도 될 만큼 우리 사회는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숲길이 끝나고 바위가 드문드문 나타나며 주변 시야가 트인 길이 이어지지만 여전히 급경사길은 아니다.
(* 나중에 찾아보니 영모전에서 발산 오르는 길에는 안부가 2번 나온다. 첫 번째 삼호아파트 등산로 만나는 지점의 안부를 지나 2번째 안부 까지는 완만한 숲길이고, 마지막으로 발산 정상 오를 때 한 번만 급경사길을 오르면 된다.)
발산은 처음이지만 석회암과 석회암 지형에 적응한 식물과 나무는 영월 출신인 나에게 익숙하다. 석회암에는 이끼류와 지의류가 많다. 뜨겁고 건조한 남쪽 바위에도 지의류가 많은데, (아래 사진 참고) 지의류가 석회암의 탄산칼슘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영월 지역은 확실히 석회암 지형이 많다. 최근에는 발산과 접산 사이 분덕재 아래로 터널 공사를 하다가 석회동굴이 발견되었고, 다행히 보존하여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앞으로 제천-영월 고속도로 공사 중에도 석회 동굴이 많이 발견될 텐데, 사전 지하 탐사를 잘하여 석회동굴 훼손이 없으면 좋겠다.
두 번째 안부를 넘어서니 점점 경사가 급해진다. 등산로 옆 바위틈에는 강아지풀, 돌마타리, 회양목, 조팝나무, 느릅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이 계절에 노란 마타리꽃을 만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을 받는다. 돌마타리는 척박한 석회암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오고 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돌마타리. 같은 석회암 지역 출신으로서 생존본능을 배워야겠다.

정상이 가까워오니 조망이 시원시원하다. 동쪽 계족산, 남쪽 태화산, 남서쪽 삼태산과 애뒤산은 방향 이정표가 된다. 태화산 남쪽으로 희미하게 소백산 연화봉 천문대를 찾을 수 있고, 청령포 뒤로 국지산과 검각산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동쪽으로 크게 보이는 제천 송학산을 쉽게 찾는다.
석회암과 섞여 층층으로 갈라진 백운석 바위가 신기하여 가까이 다가서는데...
"으악"
불과 50cm 앞에 짙은 회갈색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까치살모사 (혹은 쇠살모사)다. 머리가 쭈뼛거리며 가슴이 콩콩 거린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뱀과 멀어진다. 바위와 나무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길쭉한 것만 보면 겁이 나서 손을 쓸 수가 없다. 다리로만 균형을 잡으며 오르려니 땀이 삐질삐질 쏟아진다.
정상 아래 우회로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잠시 고민하다 우회로 대신 직진하여 곧장 올랐더니, 밧줄이 삭아서 떨어지고 길이 험하다. 안내대로 우회로를 추천한다. 손가락 굵기로 남아있는 밧줄을 잡고 100여 미터 올라 주등산로를 만난다. 50 미터 정도 오르니 발산 정상이다. 영모전에서 발산까지 고도차가 약 450미터인데, 1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발산은 정상 조망 하나로 충분히 올라갈 가치가 있다. 산 아래로 동강과 서강, 아기자기한 영월읍이 한눈에 보인다. 가까운 산과 멀리 있는 산이 겹겹이 줄을 서 있다. 올라오며 봤던 산 이외에 봉래산과 계족산 사이로 완택산, 그 뒤로 정선군 신동읍 방향의 높은 산들이 보인다. 계족산과 태화산 사이로는 김삿갓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대산이 보인다. 태화산 남쪽으로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 국망봉까지 희미하게 조망된다. 충북 단양의 삼태산 애뒤산, 제천 송학산까지 알아볼 수 있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 앞으로 보이는 옛 하도(강이 흘렀던 흔적)는 정원으로 변신 중이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면 1시간 안에 하산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기왕 올라왔으니 지도에 표시된 또 다른 발산 정상을 찾고, 두목재를 지나 금몽암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정상을 벗어나자마자 험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지도 앱으로 확인해 보니 맞게 가고 있다. 다행히 100미터 내려가니 험한 길이 끝나며 발산 정상 우회로를 다시 만난다. 잠시 시야가 트여 남쪽으로 청령포와 구하도가 다시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봉래산 뒷모습과 접산이 조망된다. 오를 때는 짙은 회색의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북동쪽 방향 푸른 산 위로 새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산 위의 뭉게구름은 최고의 여름 풍광 가운데 하나다.
지도앱에 발산 정상으로 표시된 지역을 지나는데, 정상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방금 전 올랐던 발산 정상보다 낮은 지역이고, 지도 앱에도 방금 전 지난 곳이 더 높게 표시되어 있다. 정상석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산행 지도와 지도앱에는 지금 이곳을 정상으로 표시해 놓았다. 정상이 아닌 곳을 정상으로 표시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발산 정상이 어딘들 나는 지나가면 그만이다. 나무에 조망이 막혀있지만, 문득문득 보이는 아래로 고도감이 느껴진다. 숲에는 가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힘들고 뜨겁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발산 북쪽에 있는 시루산 갈림길을 지나며 급경사길이 시작된다.
(시루산 산행기 2013년 : https://mountainstory.tistory.com/13736632 )
오늘 산행한 시간이 길지 않지만, 갑자기 급경사로 내려가니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쪽이 하산 길이니 다행이지, 거꾸로 올라왔으면 시야도 막히고 꽤 힘든 코스가 될 것 같다. 두목재에서 발산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글로 남겨 두자.
장릉이 가까워오자 굵은 소나무가 점점 많아진다. 운동기구와 큰 참나무 옆으로 두목재 안내판이 보인다. 영월 장릉 옆 보덕사 골짜기에서 소나기재 반대편 두목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차를 타고 소나기재를 넘을 때는 두목과 장릉 사이가 멀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보니 얕은 고개를 사이에 둔 이웃 마을이었던 것이다.
산행처럼 우리 삶에는 고개가 많다.
때로는 쉽게, 때로는 어렵게 고개를 넘는다.
3주 전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내는 큰 고개를 만났었다.
어떤 깔딱 고개 보다 더 힘들었지만,
이제야 고개 마루를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고개는 힘들지만 서로를 연결하는 장소이자 시름을 더는 곳이다. 산행처럼 우리 삶에는 고개가 많다. 때로는 쉽게, 때로는 어렵게 고개를 넘는다. 3주 전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내는 큰 고개를 만났었다. 어떤 깔딱 고개 보다 더 힘들었지만, 이제 고개 마루를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두목재에서 장릉 도깨비마을로 이어지는 웰빙등산로가 있지만, 나는 금몽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경사진 길을 조금 내려오니 산책로 같은 길이 이어진다. 하늘높이 곧게 자란 나무 사이로 햇살이 뚫고 들어온다.
장릉을 지나 소나기재로 가다 보면 물무리골 생태습지가 있는데(추천), 여기도 작은 실개울이 흐르며 습지와 비슷한 지형이 생성되어 있다. 발산의 급경사가 갑자기 평탄한 지형을 만나니 쓸려 내려온 흙과 숲 부산물들이 쌓이고, 지하수가 많은 지형이라 습지가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숲길은 나무다리를 지나며 끝난다. 금몽암 방향으로 100여 미터 걸어가니 작은 암자가 보인다. 초록 숲이 우거진 발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그림처럼 금몽암을 감싸고 있다. 보수 공사 중이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좋고 기분이 좋아진다.
금몽암에서 돌아 나와 자연형 홍수대비 하천 능동천 따라 보덕사까지 걷는다. 보덕사 입구에는 1882년 지어진 목조건물 해우소가 있다. 보덕사 경내 극락보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불자는 아니지만, 두 손을 모아 빌어본다.
'아버지 고마웠어요. 저 흰구름처럼, 풍성하게, 가볍게, 행복하게 지내세요. 막내아들이 흰 구름 보면 항상 웃어 줄게요'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깨비 마을을 지나 장릉 옆 주차장까지 걷는다. 하지만, 영월 시내 가는 버스가 1시간 뒤에나 있다. 능동천을 따라 영월의료원 옆 베이커리 카페까지 1.5km를 걷는다. 빵을 골라 계산하는데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일기예보도 안 보고 무작정 걸었는데, 누군가 먹구름이 늦게 가도록 막아 준 것 같았다.
카페에 앉아 있다 비가 그친 후 나와보니 발산으로 흰 구름이 올라가고 있다.
발산을 보고 씩 웃어 본다.
#산행정보
산행지: 영월 발산 (674.4m, 강원도 영월)
날 짜: 2025년 9월 1일
날 씨: 흐림 (산행 끝낸 후 비)
일 행: 맑은물 홀로
코스: 영모전 주차장 - 발산 정상 - 시루봉 갈림길 - 두목재 - 금몽암 - 보덕사 (약 6km)
소요시간: 3시간 5분 (오후 12시 45분 ~ 오후 3시 50분)
교 통: 영월역 - 영모전 도보 이동(약 15분), 보덕사 -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 도보 이동 (약 20분)
** 연계산행지 : 영월읍 발산
강원도 오지 산행, 영월 시루산(2013.7.26)
강원도 오지 산행, 영월 시루산(2013.7.26)
짧은 휴가를 맞아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영월 고향집에 들렀다. 아내에게 여름휴가로 근처 산행 허락을 받았다. 원래 동강 어귀의 완택산에 가려 했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아 고향집에서 버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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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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