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훅 치고 들어오는 계절이다.
가을바람이 옆구리를 훅 치고 들어오고, 단풍과 국화가 마음속으로 훅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괜한 감성에 청승을 떨며 가을을 보내기보다, 가을 산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목요일 아침 8시 전철 4호선 상계역에 내려 김밥집을 찾는다. 지난겨울 개방산 산행 후 반년만에 조PD와 산행이다. 오늘 목적지는 단풍 명산 가평 명지산인데, 6시간 산행을 부담스러워하는 조PD 의견을 듣고 가까운 남양주 축령산으로 목적지를 바꾼다. 서울을 벗어나니 새벽에 내린 비가 구름이 되어 이산 저산을 오르고 있다. 출근시간이라 길이 막혔어도 축령산 휴양림 제1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20분. 이른 오전 출발하는 산행이 좋다.
신발끈을 한번 더 조이고, 배낭을 메고 등산안내판 앞으로 간다. 이른 시간이니 만큼 축령산-절고개-서리산을 거쳐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로 한다. 축령산 휴양림에는 평일인데도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충격이다.
캠핑사이트를 지나 잣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비 온 뒤 숲 향기는 어떤 에너지 드링크보다 훌륭하다.
언덕 같은 숲길을 지나 능선에 오른다. 숲이 우거저 아래 조망이 보이지 않지만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초반 오르막이 가팔라 힘들다는 조PD 속도에 맞추려고 했지만, 피톤치드 과다 수용인지 자꾸만 먼저 앞서 가게 된다. 뒤를 힐끗힐끗 보며,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빨간 나무열매가 눈에 띈다. 딱따구리 울음소리(나무 두들기는 소리와 다름),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숲 속의 버섯과 노랗게 변하는 생강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주변 자연에 신경을 쓰니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으로 기묘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가 나무 틈새로 보인다. 올라가 보니 독수리 바위 안내판이 있다. 수리와 많이 닮지는 않았는데도 수리보다 더 웅장한 기세가 느껴진다. 조금 미끄러운 바윗길을 지나 수리머리에 오르니 수리바위는 보이지 않고 수동면 일대와 주변의 높은 산들이 보인다.
처음으로 오른 조망점인데, 맑은 날씨 덕분에 50km 떨어진 북한산과 관악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수동면 너머로 철마산에서 천마산으로 굼틀대며 이어지는 천마지맥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2년 전 가을 천마지맥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고도가 높다며 조PD가 고도계를 켜보니 이미 해발 630미터, 짧은 시간에 높게 올라왔다.


수리바위를 지나면 잠시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힘들게 올라온 조PD의 거친 말이 들려온다.
"아 xx, 왜 다시 내려가냐고?"
하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라 내리막은 짧고 금세 전망이 트인 능선에 오른다. 남이 장군이 수련했다는 남이 바위에 오르니 또다시 주변 수십 킬로미터 반경이 모두 조망된다. 산에 올라 세상을 보는 조망은 단순한 시각적 인식을 뛰어넘는다. 주변의 산과 지형을 찾는 재미, 올랐던 산이 보이면 떠 오르는 추억, 산과 인류가 만나는 방식, 산과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처음에는 안구정화, 다음으로 호흡정화, 마지막 단계로 복잡한 마음이 정화된다. 한국에는 도전이라고 할 만한 산이 없기에, 이런 조망을 즐기며 심신의 평화를 찾으려는 마음이 크다.
남이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 남쪽으로는 중간중간 낭떠러지가 있어 고도감이 더 느껴진다. 산 중턱까지 시원했던 바람이 이제는 서늘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아래에서 단풍색이 보였는데, 올라와 보니 나뭇잎이 마르며 그냥 색이 변했던 것이다. 8월에 폭염에 가뭄이었지만 9월부터는 비가 자주 내려 고운 단풍을 기대했는데, 나뭇잎이 마른 이유가 궁금했다. 7월 중순, 8월 초 시간당 100mm 가까운 비가 내릴 때 폭풍우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만에 축령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이라면 모름지기 숨 차고, 땀 흘리고, 다리 아플 때쯤 올라야 하는데, 축령산은 완만한 언덕을 따라 거저 올라온 느낌이다. 돌탑이 있는 해발 887미터 축령산 정상 조망은 설명이 필요 없다. 수리 바위, 남이 바위, 정상부 능선에서 보았던 조망이 모두 모여있다. 거기에 더해 동쪽으로 아침고요 수목원이 있는 가평 행현리, 현리 일대, 경기도의 지붕 가평군 북면 1000미터를 넘는 산들이 아주 잘 보인다.
보이는 산 이름을 조PD에게 주욱 설명해 본다.
"저기 동쪽으로 용문산, 요기 앞에 은두봉, 중간에 화야봉... 북쪽으로 청평호 옆으로 양수발전 댐이 보이는 호명산, 뾰족하게 보이는 대금산, 깃대봉, 수해가 났던 마일리 뒤로 연인산, 구름과 맞닿아 있는 명지산과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 북서쪽으로 경기 최고의 단풍산행지 운악산, 가까이 보이는 서리산, 뒤로 주금산, 서쪽으로는 앞쪽 철마산, 천마산...."
세상에는 산이 참 많고, 나는 말이 많고, 조PD는 다행히 호기심이 많다. 북동쪽 멀리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산을 궁금해하여, 나는 추측임을 전제로, 울퉁불퉁한 산은 '용화산', 평평한 정상부 능선은 '춘천 대룡산'일 거라고 말한다.

산을 보면 즐거움이 충전되지만, 지난여름 큰 수해를 입은 가평 현리 마을을 보면 조금 불편한 마음도 있다. 미리 더 준비를 했더라면, 일부 난개발 허가를 막았더라면 인명과 재산피해가 줄지 않았을까? 마치 인구 감소와 환경 규제 대가 같은 가평, 양평 일대 난개발은 막고, 다른 정의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조PD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래서 함께 산행을 한다.
우리 말고 다른 등산객은 없는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데, 사람은 없지만 하늘에는 까마귀 떼와 매 한 마리가 섞여 날고, 주변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말벌이 날아다닌다. 정상에서 하산하려는데 산에서 듣기 힘든 오리 종류의 새소리가 들린다. 직감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두리번거리니, 역시나 기러기 떼들이 시옷(ㅅ) 자를 이루고, 가평 쪽에서 서울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3월과 10월, 난데없이 하늘에서 꽥꽥꽥 새소리가 날 때는 하늘을 보자."
정상에서 절고개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산행 초입만큼이라 가파르다. 절고개 고도가 약 680미터라 약 200미터 고도차를 내려서는 것이다. 계단이 많아서 이쪽으로 올라오면 힘들 것 같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지친듯한 조PD,
"오늘은 서리산 말고 그냥 내려갑시다"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서리산까지 갈 체력이 되고, 시간도 되는데... 음...'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걸으니 기분이 들킬 일은 없지만, 아쉽다. 하지만, 단독 산행이 아닌 이상 '더불어+함께'가 산행의 기본이다. 서리산은 다음 기회에 가기로 하되, 절고개에서 약 400여 미터 떨어진 능선상의 억새밭 사거리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걷기 좋은 임도를 따라 억새밭사거리 헬기장 전망대에 도착한다. 가평 쪽에 생긴 경기도 잣향기 푸른 숲과 연계하여 최근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축령산 자연휴양림 방향은 넓은 임도로 시작된다. 우리는 벼락바위 만나는 지점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지금까지 능선길만 걸었는데, 최근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전지라 골 계곡도 수량이 풍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게 이어지는 잣나무 숲길이다. 지금은 잣을 수확하지 않는지 바닥에 잣송이와 잣알이 널려 있다. 몇 개 주워 깨어 잣알을 입안에 넣으니 참 고소하다. 습한 숲에서 코로 숨 쉴 때마다 잣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50년 이상 된 잣나무 보다 더 튼튼해지는 느낌이다.
아래로 내려오며 물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예상한 대로 잣나무 숲이 끝날 무렵 작은 물줄기 서너 개가 만나며 계곡이 되고 있다. 성급한 마음에 바로 계곡 가까운 길로 내려간다. 곧 계곡 옆 편한 길을 걷게 되리라는 기대와 달리 울퉁불퉁한 바위길이 20분 정도 이어진다. 그러니까 잣나무 숲이 끝나는 갈림길에서 오가네 저수지 방향으로 100미터 정도 우회했다가 임도 따라 내려오는 길이 좋았을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벼락바위에서 계속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험한 산길을 벗어나 너른 임도를 다시 만나고, 그 옆으로 계곡물이 촬촬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른다. 시멘트 임도에 걸터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발의 피로가 물에 씻겨간다. 이어 차가운 기운이 다리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내가 나무가 되어 물을 빨아올리는 기분이다. 오늘 탁족은 딱 맞는 장소에, 딱 맞는 수량에, 딱 맞는 시원함을 느끼기에 최적이다. 이는 순전히 여러 가지 운이 우연히 겹쳤기 때문이다. 10월의 잦은 비, 명지산 포기 축령산 산행, 서리산 포기, 임도 포기 험한 잣나무 숲을 통과한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내가 우연한 일들의 연속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금 여기 있기 때문이다. 구슬 같은 운이 트럭만큼 많아도 내가 그 자리에 없으면 나와 관계없는 일일 뿐이다. 하여튼 나는 아직도 이런 나만의 철학을 믿는다.

탁족을 정리하고 계곡 옆 임도를 따라 걷는다.
조PD 왈, "스페인 애들은 자전거 타다가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있으면 아마 발가벗고 바로 뛰어들 거야"
계곡을 보니 사람들의 눈을 피할 곳이 보이긴 하지만, 과유불급, 한국에서는 탁족이면 충분하다.
임도삼거리를 지나 내려오는 동안 산에서 물줄기 몇 개가 더 전지라 골 계곡으로 합류된다 오래전 여름 가평 연인산 용추계곡 산행 때 보았던 물줄기들이 생각나는 풍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쉼터를 지나 다시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돌아온다. 출발할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캠핑사이트에서 자유롭게 쉬고 있다. 참 여유로워 보인다. 현실의 어려움을 잘 알지만, 갑자기 이런 구호가 떠 오른다.
평일에 캠핑하라
평일에 산행하라
평일에 떠나라.
** 2009년 축령산-서리산 산행 **
인생도 계절도 여름에서 가을로, 서리산-축령산 종주산행(2009.8.30)
인생도 계절도 여름에서 가을로, 서리산-축령산 종주산행(2009.8.30)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두 번째 풍력발전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다.오래 전 부터 예정된 퇴사라 덤덤했는데,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뭘 해야 할지 막막함이 다가온다.미래의 길을 볼 수 있는 능력
mountainstory.tistory.com
#산행정보
산행지: 축령산(887미터, 경기 남양주, 가평)
날 짜: 2025년 10월 16일
날 씨: 맑고 구름 조금
일 행: 2명 (맑은물, 조PD)
산행코스: 축령산자연휴양림 - 수리바위 - 축령산 정상 - 절고개 - 벼락바위 - 계곡 - 축령산자연휴양림
산행시간: 4시간 30분 (9시 30분~14시 00분)
교 통: 승용차 이용 (대중교통은 오남역 혹은 마석역에서, 땡큐버스 환승)
#포토산행기


























































(축령산 산행 영상)
https://youtu.be/gKmIOf_ect4?si=U89qUS31fRo41yQ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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