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났지만 무더위가 이어진다.
요즘 '한 달에 한 번은 산에 가자'라고 다짐하고 있지만 폭염산행은 쉽지 않다.
게다가 8월 초 아버지를 멀리 보내드리고 무엇인가에 떠밀려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행정절차라든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보다, 그리움과 슬픔을 넘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변화를 위해, 8월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아직 가보지 않은 북한산 국립공원 코스가 몇 안 남았는데 오봉 코스도 그중에 하나다. 2주 전 극한폭우에 송추계곡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쉽게 오봉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집에서 송추계곡 입구까지는 구파발을 거치든, 의정부를 거치든 접근 시간이 비슷하다. 구파발 방향으로는 많이 다녀봤으니 이번에는 의정부를 거쳐 가기로 한다. 전철에서 송추 가는 방법을 검색해 보니, 11시 16분에 의정부역에서 교외선 기차가 있다. 지난해 운행을 재개한 교외선을 타 보고 싶었지만 빠른 산행을 위해 의정부역 지하상가를 지나 송추 가는 버스를 탄다. 다음에 또 송추계곡을 기점으로 산행을 하게 되면 9시 45분에 의정부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겠다. 20여 분 만에 송추계곡입구 정류장에 내려 송추계곡까지 걷는다. 햇살이 여전히 뜨겁지만 한여름보다는 덜 따갑다.
여름철 한시 특별 개방 구역인 송추계곡에 내려가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놀고 있는 가족도 있고, 산행 모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물가에 앉아 쉬고 있다. 국립공원의 자연 생태계는 보호해야 하지만, 몸으로 자연을 체험하면 자연과 친하게 되어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된다. 한시적이나마 국립공원 계곡을 개방하는 것은 좋은 결정이다.
자연을 보존하려면 자연을 더 체험하게 하자.
8월 13일 폭우때 휩쓸린 풀과 나무 흔적이 둑 상단에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다. 당시 북한산 일대로 시간당 100mm, 누적 200mm 정도의 비가 내렸는데, 극한 폭우가 30분만 더 내렸다면 끔찍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큰 피해가 없었던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다.
국립공원 송추지구 사무실을 지나고도 송추계곡 개방구간이 이어진다. 맑고 깨끗한 계곡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나도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산행 초반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눈으로만 계곡을 감상한다. 억새밭 부근에서 개방구간이 끝나는데, 넓은 임도대신 좁은 계곡 옆길로 들어섰더니 앞으로 너른 암반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가 보인다. 소나무 '송', 연못 '담'을 쓰는 송담(松潭) 폭포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너른 암반 아래로 하얀 물이 떨어지며 맑고 깊은 소가 있다. 폭포 위 계곡은 짙은 녹음, 위로는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그림으로도 그리기 힘든 풍광이다. 암릉이 많은 북한산에 비가 오면 멋있는 폭포가 많이 생기곤 하지만 송담 폭포는 풍광 베스트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멋있다.
이런 장소에서는 더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산행은 구름처럼 물처럼 계속 흘러야 한다. 송담폭포 지나 나오는 다리를 건너니 송암사 가는 숲길이 나온다. 계곡 옆 우거진 평지 숲에 가득 찬 청량감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속 깊숙하게 들어온다.
"으으으~~ 으으윽~ 악!"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발아래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숲처럼 얼룩덜룩한 색깔의 뱀이 잡목숲으로 스르륵 사라진다. 누룩뱀 혹은 유혈목이로 추정되지만 놀란 마음은 송암사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송암사는 松巖寺라는 이름에 맞게 대웅전 앞마당과 범종각 옆으로 소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다. 송암사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 앞쪽 다리를 건너 주등산로를 찾아 나온다.
예전 상가와 식당이 점령했던 곳은 이제 자연에게 돌려주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을 떠올려 봐도 강제 점령세력이 스스로 점유지를 내놓기 쉽지 않은데, 인간 사회가 혼란스럽고 모순이 있어도 공평한 윤리에 기반한 사회가 미래인 것 같다. 생태 복원 지역을 지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치교를 지나며 진짜 등산로가 이어진다. 한동안 등산로 옆으로 송추계곡을 보며 오르게 되는데 이름 없는 폭포와 계류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암반 위를 흐르는 물은 쉼 없이 재잘거린다.
계곡이 두 갈래로 나뉘는가 싶더니 사패산과 송추폭포 갈림길이 나온다. 송추폭포로 향하는데 등산로 옆으로 지난 8월 13일 폭우 때 떠내려온 나무 밑동 몇 개가 보인다. 이런 나무들이 폭우 때 물을 막았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며 큰 피해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겨울 폭설에 북한산 나무들이 많이 부러졌는데 우려했던 홍수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다.
송추폭포 계곡으로 들어서니 조금씩 길이 가팔라진다. 물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5m 정도 되는 폭포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아 저것이 송추 폭포인가? 조금 더 잘 보였으면 좋았을걸...'
아쉬워하며 조금 더 오르니 높은 폭포가 또 보인다. 폭포 아래로 가까이 가니 새하얀 물기둥이 푸른빛 소를 향해 떨어진다. 옆에 폭포 안내 판이 있는데, 송추(松楸)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아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무에서 유래한 게 맞겠지만, 실제로는 송추폭포를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폭포수가 소나무 위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소나무 위로 물이 떨어지는 송추폭포도 말이 되는 것 같다.
송추폭포 위로 올라가 보니 작은 폭포가 두어 개 있고, 100여 미터 위로 또 다른 폭포가 있다. 송추폭포가 아니라 송추협곡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단, 수량이 풍부할 때만). 설악산 천불동 계곡, 십이선녀탕 계곡의 일부분을 옮겨온 듯하다. 물론 규모는 명승지 폭포에 비할게 아니다.
송추협곡(?)을 지나고도 꽤 높은 지점까지 가는 물줄기가 이어진다. 마지막 계곡을 건너며 시원한 물가에서 잠시 쉰다. 오늘은 제대로 쉬지도 않고 올라왔다. 나 홀로 산행인데 마음속 생각보다 눈과 귀가 송추계곡의 풍광에 집중하고 있다.
계곡이 없어진 후로 참나무와 단풍나무 우거진 숲 속 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초록초록한 기운에 푹 빠진 길을 거의 무아지경으로 오르다 보니 오봉산 주능선에 도착한다. 나무 사이로 도봉산 정상부가 얼핏 보인다.
오봉 방향 능선으로 가면 오봉으로 가는 뚜렷한 길과 오봉산 정상부(오봉과 오봉산은 다른 봉우리)로 향하는 희미한 길이 나온다. 오봉으로 향하는 주등산로를 따라가다 희미한 길로 빠졌더니 얼굴에 거미줄 세례를 받는다. 오봉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없는 것 같아 확 트인 전망대까지만 오르니 북한산 정상부, 도봉산 정상부와 사패산, 상장봉 능선, 서울 도시 위로 각양각색의 여름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안부를 지나 오르니 바로 오봉 정상이다. 앞쪽으로 나머지 4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출입금지 구역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오봉답게, 오봉 정상에서도 멀리까지 조망이 탁 트여있다. 우이령 너머 영봉, 인수봉, 백운대 일대를 시작으로 상장봉 능선, 서쪽으로 여성봉 능성, 북쪽으로 사패산과 도봉산 자운봉, 동쪽으로 수락산에서 불암산까지 보이고, 그 뒤로 남양주와 포천의 높은 봉우리들이 보인다.
오봉 정상에 사는 고양이 가족에서 눈인사를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오봉샘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서쪽으로 아기자기하게 솟아있는 다섯 개 봉우리가 보인다.
조금 가파른 듯 한 길을 빠르게 내려오니 계곡이 시작되는 시점에 오봉샘 약수터가 있다. 다행히 물이 차갑고 깨끗하여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땀을 많이 흘려서 오봉샘 물 맛있다. 오봉샘 옆 계곡에서부터 우이령천이 졸졸졸 송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북한산 중간부 지형의 골짜기 길은 능선 사면을 타고 올라가 도봉주능선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우이동까지는 지난해 10월 도봉산 산행 때 지났던 길이다. 익숙한 풍광도 있지만 도봉산 정상부, 동쪽 멀리 수락산, 멀어지는 오봉에 미련을 두며 우이암 방향으로 걷는다. 산행 시간이 길지 않은데 힘이 든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아직은 여름인가 보다.
우이암이 바라보이는 바위에는 지난 해 봤던 아기 고양이들이 부쩍 자라서 그들의 영역을 만들었다. 사람이 접근해도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배를 드러내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야생에서 이렇게 무방비로 늘어져 잠에 빠진 녀석들 참 편해 보인다.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다. 내 눈도 이상해졌는지 우이암이 고양이 꼬리 혹은 고양이 귀 모양으로 보인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친한 척을 했지만 귀여움만 후다닥 챙기고는 자리를 떴다.
우이암 옆을 돌아 원통사 내려가는 길은 꽤 가파르다. 습한 곳은 미끄러운 곳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원통사 아래 계곡으로는 북한산 국립공원 공단 헬리콥터가 두두두두두두두둑 하며 저공비행을 한다. 원통사 입구에 잠깐 올라서니 공단 직원들이 헬리콥터가 내려놓은 물건을 원통사로 옮긴다. 안내판으로 추정컨대, 여름철 산행안전에 필요한 물품이었던 것 같다. 원통사에 되돌아 나와 우이동 방향으로 간다. 이 길로 쭉 내려가면 산행 끝이다.
참나무 숲에는 늦여름 버섯들이 많이 솟아 나와있다. 일부는 멧돼지가 많이 훼손시켜 놓았는데, 멧돼지가 독버섯을 먹은 것인지? 버섯 근처에 사는 다른 먹이를 찾은 것인지 궁금하다.
빨리 하산하여 산행을 끝내고 싶어 빠르게 내려가는데 작년에 하산했던 길과 조금씩 달라지더니, 공동묘지로 들어가고 말았다. 안내판을 보니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원인데, 수목에 뒤덮인 봉분, 파묘된 무덤, 골짜기 물에 휩쓸린 무덤등 관리 안된 무덤도 일부 있었다. 어두울 때 이쪽으로 잘못 들어서면 담력 제대로 쌓을 것 같았다. 방심하다 길을 잘못 들어선 스스로에게 한숨이 나왔으나 야생의 공동묘지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골짜기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내려와 길을 찾아 도봉 풋살장 입구가 보인다. 안전하게 산행을 끝내고, 원래 계획했던 우이전철역으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송추계곡은 예상하지 못했던 훌륭한 경관을 갖춘 명승지 같았고, 우이동 공동묘지는 오싹한 해프닝이었다.
#산행정보
산행지: 북한산 송추계곡-오봉 (고양시, 서울시)
날 짜: 2025년 8월 27일
날 씨: 맑음
일 행: 맑은물 홀로
코스: 송추계곡 - 송추폭포 - 오봉산 - 오봉 - 우이암 - 원통사 - 우이동 공동묘지 (약 12km)
소요시간: 6시간 (11시 20분 ~ 17시 20분)
교 통: 의정부역 - 송추까지 버스, 우이동에서 우이경전철
#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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