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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삶. 힘들면 쉬었다 가자

마음이 가라앉을 때는 몸을 높게! 북한산 육모정-영봉 (2025. 10. 28)

by 역주행맑은물 2025. 10. 28.

10월 마지막주가 되자 날씨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어느새 가을이 이렇게 깊어졌지?'
 
온도가 낮아지면 구리스 점도가 높아져 삐걱대는 기계처럼,
기온이 내려가니 몸과 머리가 삐걱대며 일이 잡히지 않는다.
 
인생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산길을 먼저 찾는다.
산행과 삶 사이의 길은 연결되기도 끊어지기도 하지만,
쉬운 산행길을 통해 어려운 인생길을 헤쳐나가고 싶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길이 없어도 가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좋은 길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많다.
 
옛길은 옛사람들의 삶을 알면 찾을 수 있다.
삶을 위한 이동이 누적되면 길이 된다.
현대길은 앱을 켜야 찾을 수 있다.
욕망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옛길, 현대길, 낮길, 밤길, 보이는 길, 만드는 길.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험한길, 가파른 길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산길이든, 삶 길이든.

온도가 낮아지면 구리스 점도가 높아져 삐걱대는 기계처럼,
기온이 내려가니 몸과 머리가 삐걱거린다.

 

상황이 녹녹치 않을 때 의지로 스스로를 닦달하면 어딘가 고장날것이 뻔하다.
일단 몸을 움직여 물리적인 공간에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 내가 잘하는 산에 가기로 한다.
가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명산에 가고 싶지만, 평일에 혼자 인적 드문 산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집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육모정능선을 가보기로 한다.
 
우이역을 나와 북한산을 보는 것 만으로 이미 기분이 가벼워진다.
우이동 유원지 뒷길을 따라 육모정고개지킴터에서 산길로 들어선다.
그냥 지나치려다 들른 용덕사 여래상 앞에서 합장하고 크게 숨을 들이셨다 내쉰다.
무엇을 이루게 해 달라는 마음을 버리고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내려놓는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속에 무언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우이동에서 해발 400미터 육모정 고개 쉼터까지 55분 걸렸으니 어려운 길은 아니다.
상장봉 방향 왕관봉은 출입금지구역이다. K 지도 앱에는 등산로가 표시되었는데, 잘못된 정보다. N 지도 앱은 사용자 의견을 반영하는 기능이 있는데, 왕관봉 등산로 표시가 없다.
'자주 쓰던 지도 앱을 바꿔야 하나?'
'지도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듯, 딱따구리가 나무 사이로 삐익 삐익 울며 날아다닌다. 
 
육모정능선을 걸으면 수시로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좌우앞뒤로 인수봉, 백운대, 도봉산, 오봉, 상장봉등 북한산 주요 봉우리가 보인다. 지도를 보며 산행을 상상할 때와 직접 산행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지도를 보며 산행지 결정장애가 생긴다. 그런데 어느 산이든 직접 가보면 다르다. 지도에 표기된 길이 다르고 지형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숨 쉴 때 들어오는 향기와 신선한 기운, 바람의 간지럼까지 살아 있는 산을 느낄 수 있다. 지도를 보는 대신 산에 더 많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산에서 내려가면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육모정 능선은 조망은 무거운 마음을 한 없이 가볍게 해준다.

 

멀게 보였던 백운대와 인수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영봉 남쪽으로 인수봉이 우뚝 서 있는데 역광이라 풍광은 아쉽다. 그래도 영봉 일대에서 전체적인 북한산 조망은 아주 좋다. 동쪽으로 우이동 골짜기가 내려앉고, 서쪽으로 사기막 골짜기가 내려앉는다. 산 봉우리가 능선을 거쳐 계곡으로 부드럽게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높은 봉우리가 내려앉는 것과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영봉을 내려와 2시간 만에 하루재에 도착한다. 계획 대로 우이동으로 바로 내려갈까? 더 걸을까? 잠시 고민하다 백운동암을 지나 정릉 청수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산에 다니며 욕심을 많이 내려놓으려 하는데, 아름다운 산속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심은 버리기 힘들다. 우이암을 지나 오르는 길에는 단풍이 아기자기하게 물들어 있다. 작년에 아이와 올랐던 길, 올해 숨은벽을 너머 내려왔던 길인데,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수리가 끝나 전시 및 쉼터로 바뀐 백운산장 내부는 깔끔하다. 덥지 않은 날씨의 도움으로 백운동암문까지 쭉쭉 올라가는데 지금 걷는 이 길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 순간 근심걱정이 사라진 것이다. 이성과 의지로 지워진 게 아니라 걸으면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근심걱정이 많아질 때가 있다. 이성이라는 생각도 내가 나를 속이는 가짜 생각일 수 있다. 이때 걸으며 몸을 움직이면 붙어 있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함께 고이는 게 아닐까? 

마음이 가라앉으면 몸이라도 높은 산으로 가자.

 
 백운동암문에서 백운대는 지나치고 만경대 아래로 향한다. 만경대를 돌아가 용암봉암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백운동계곡, 노적봉, 의상능선, 원효능선에 감탄하며 걷는 길이다. 게다가 오늘은 붉게 물든 단풍 천국이다. 사진 기술이 늘어났고 영상이 보편화되었지만 풍광은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어느덧 서쪽 하늘도 붉은빛으로 저물어 가고, 숲도 붉은빛으로 저물어 가는데, 내 머리카락은 단풍철을 지나쳐 설경이 되고 있다.
 
북한산성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수리 중인 동장대를 지나 도착한 대동문은 적막만이 흐른다. 대동문에 여러 번 올랐지만 아무도 없는 대동문은 오늘이 처음이다. 칼바위 능선 갈림길을 지나 보국문에 도착하여 나무 사이로 백운대를 찾아보고는, 청수계곡으로 내려간다.

용암봉 아래 어디쯤 노란 주황 단풍, 왼쪽은 북한산성 가을#2


만추의 가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수계곡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풍이 조금 덜하다. 대략 고도 100미터당 단풍이 하루 정도 차이 나는 것 같다. 자연은 수식으로 정확하게 표시할 수 없다. 변덕일 수 있지만 유연함이 있기에 이 대자연은 수천만 년, 수억 년, 지구의 역사가 된 것이다.
 
청수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의 쌍샘 약수터는 오늘도 많은 물을 뿜어내고 있다. 깊은 산속 샘을 마시면 내 몸속에 산의 정기가 들어오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쌍샘 아래쪽으로는 한동안 계곡 물이 흐르더니 정릉 2교 넓적 바위 근처는 바짝 말라 있다. 청수계곡 지하수 수위는 계곡이 말라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상보다 30분 정도 늦어 주변이 어둑어둑해져 오지만, 아주 어둡지 않으니 길은 보인다. 서서히 어두워지니 나도 어둠에 익숙해진다. 길도 삶도 그럴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받는 밝은 길에서는 불만 꺼져도 어둡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늘진 내 길을 걷고 또 걸으면 내 삶도 밝은 길이 될 것이다.
 
어둠속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다 내려온 것 같다.
청수계곡 아래쪽은 10월 초 내린 비로 아직 평년보다 물이 많다.
주변은 완전히 컴컴해졌지만 등불처럼 밝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있던 아이가 반겨준다.


#북한산 영봉 산행정보
산행지: 북한산 영봉(해발 604미터, 서울시-고양시)
날 짜: 2025년 10월 28일
날 씨: 맑음 (구름 조금)
일 행: 맑은물 홀로
코스: 우이동 - 육모정고개 - 영봉 - 백운동암문 - 대동문 - 보국문 - 정릉 청수계곡 (약 12km)

소요시간: 4시간 55분 (13시 10분 ~ 18시)
교 통: 서울 우이경전철 우이역 이용

 


#영봉 포토산행기

우이역에서 육모정지킴터 가는 길
육모정지킴터 부근, 왼쪽 용덕사 방향으로 간다
용덕사 입구,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들어가 보고 싶다
용덕사 마애약사여래입상. 소원을 빌기 보다, 비움을 택한다
육모정고개 오르는 길의 독특한 모양의 바위
개 코 같기도 하고,
육모정 고개, 왕관봉(우이령 방향)은 출입 금지다.
육모정 고개. 쉬었다 가기 좋다
육모정 고개에서 영봉 가는 길에 보이는 도봉산. 이런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멀리 인수봉이 보인다. 인수봉은 햐안 바위가 인상적인데, 육모정(영봉)에서 보면 역광이다.
왼쪽 왕관봉, 가운데 오봉, 오봉산
육모정 능선 어딘가에서 본 동쪽 수락산(왼), 불암산(우), 그 사이로 천마산 쪽
왼쪽 가운데 계곡을 따라 여기까지 올라왔다. 앞 봉우리는 해골바위 능선인듯 한데, 법정 등산로가 있는지 미확인.
육모정 능선엔 이런 아름다운 바위들이 많다
육모정 능선 서쪽 사기막골
영봉 뒤로 인수봉이 겹쳐 보인다.
영봉 근처에서 동남쪽 방향, 왼쪽 도봉, 가운데 강북. 오늘은 구름이 큰 역할을 한다
영봉 근처 전망대에서 남산 N타워.
북쪽으로 오봉, 하늘에는 렌즈구름 될 뻔한 구름
영봉 근처에서 동쪽, 하늘의 구름이나 산이나 형태가 비슷하다.
영봉근처 전망대에서 북쪽 도봉산
영봉 근처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육모정 능선, 뒤로 도봉산, 오른쪽으로 수락산, 불암산이 보인다.
동남쪽 산을 당겨 본, 갑산-예봉산, 검단산이 확인된다.
영봉 근처에서 남쪽 방향 능선. 지도로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영봉 근처에서 남쪽, 오른쪽 남산 N타워, 오른쪽으로 청계산(?), 아무튼 산이 겹겹겹이다.
북쪽으로 의정부 아파트 단지, 그 뒤로 천보산과 양주 산군들이 보인다.
북동쪽을 조금 더 당겨봐도 산이 첩첩이다.
끈질기다.
영봉에서 본 고양시, 뒤로 희미한 한강어귀
우이동으로 모여드는 골짜기들, 영봉에서 본 모습
영봉에서 본 인수봉. 역광이라 아쉽다
영봉에서 본 사기막골. 고양시로 흐르는 창릉천 상류다.
북쪽 방향, 왼쪽의 챌봉, 한강봉, 가운데 감악산(추정), 한강봉 아래 벌목지는 1주일 뒤 산행.
영봉 정상 표지석 대신, 안내판 표지(해발 604미터)
영봉에서 하루재 내려오는 길에 인수봉, 단풍
인수봉 x 단
북한산 하루재
인수봉에 무슨 일이? 헬리콥터가 인수봉 바로 아래 숲에 거의 착륙할 정도로 접근함
인수암 & 인수봉
인수암에서 백운봉암문 오르는 길
백운봉암문 오르는 길에 뒤돌아 본 북쪽 조망
물에 흘러가든, 세월에 흘러가든, 가는 건 마찬가지
인수암에서 백운봉암문 오르는 계단길 (내리막 뷰)
새로 단장하여 전시, 쉼터가 된 백운산장
빛을 받아 제 얼굴을 찾은 인수봉
백운봉암문
백운봉암문 옆 광각으로 찍은, 백운대(왼), 인수봉(오른쪽), 오른쪽 아래로 멀리 도봉산
백운봉암문 너머 북한산성계곡 내려 가는 길. 왼쪽은 노적봉 가는 길, 오른쪽은 계곡으로 직강하.
만경대 아래에서 본 백운
백운대 만경대가 스르륵 계곡으로 내려 앉는다.
한강을 건너는 방화대교, 멀리 서해바다, 오른쪽 뒤로 인천 계양산,
만경대 아래 단풍
백운대를 당겨 보니.
북한산성 계곡 오른쪽으로 염초봉(위), 원효봉(아래)

 

만경대 아래에서 본 노적봉(앞), 보현봉과 의상능선 (뒤로 멀리)
올라갈 수 없는 만경대
노적봉(좌), 원효봉(우)
용암봉 아래에서 본 의상능선
북한산 용암봉 아래 단풍
북한산 용암봉 아래 단풍
용암문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의상능선(오른쪽 가로), 남장대(가운대 능선), 보현봉 (가운데 왼쪽 높은 봉우리)
용암봉(만경대 봉우리가 겹침), 노적봉(좌), 인수봉(우)

 

보현봉(왼)에서 문수봉, 남장대로 이어지는 능선
북한산 북한산성의 가을
북한산성 길, 이런 경관은 보는게 아니라 체험하는 곳
저녁노을이 붉을까? 단풍이 붉을까?
대동문의 가을.
칼바위능선
북한산성 가을#3, 보국문 (암문이라 윗쪽만 보임)
보국문에서 내려가는 길
청수계곡 상류 쌍샘 약수
북한산국립공원 정릉 청수계곡 6시 도착.
용암문(왼쪽), 보국문(오른쪽), 누각이 없는 암문 친구